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푸치니 (4): 목숨까지 걸면서”

by Jas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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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복 칼럼

 

 

 

푸치니(4):  목숨까지 걸면서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는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하나도 아니고 세가지를 사냥하기 좋아했는데:

첫째, 들새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피사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Torre del Lago) 에
30여년을 살면서 작곡을 많이 했고 친구들과 자주 만났는데
틈만 있으면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야생 오리를 비롯해서 들새들을 즐겨 사냥했다.
푸치니 박물관이 있고 매년 여름에 야외극장에서 푸치니 축제를 열고 있는 곳이다 .

둘째, 오페라 臺本 (libretto) 의 原典을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누가 벌써 오페라로 만들었어도, 만들고 있어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마농 레스코> 는 마스네 (Massenet) 가 10여년 전에 만들어
비교적 성공을 했던 것이었고
<라 보엠> 은 레온카발로 (Leoncavallo) 가 먼저 착수한 것이었다.
<토스카> 의 경우에는 프란체티 (Franchetti) 로부터 오페라화 할 권리를 빼았었다.
내용이 너무 맹렬하고 (강간, 고문, 처형 등) 정치성이 강해서
오페라 깜이 못된다고 설득했다고도 하고,
본인이 더 훌륭한 푸치니에게 양보했다고도 한다.

세째, 여자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사생활에서 여성들을 (미국 말로)
많이 죽였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에서도 8명을 죽였다.
첫번째 오페라에서는 초장에 죽여 버렸다.
그의 3대 명작인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에서도 다 죽였다.
미미는 폐병으로 죽었고, 토스카는 성벽 아래로 투신 자살했고, 나비 부인은 할복 자살을 했다.

이번 회에서 소개할 <투란도트> (Turandot) 에서도 여자 노예를 죽였다.
그러자 주인공 투란도트는 자신도 죽임을 당할까봐
작곡가 푸치니를 먼저 죽였다. 그래서 푸치니는 <투란도트> 를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채
후두암에 걸렸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주인공 투란도트는 중국 공주이다.
페르시아 말로 투란 (Turan) 의 딸 (dokht) 이라는 뜻이다.
마지막 ‘트’ 를 발음하지 않고 ‘투란도’ 라고도 한다.
푸치니 자신도 투란도라고 발음했다.

투란도의 조상 할머니는 남자들 한테 왕위를 빼았기고,
강간당하고, 살해되었다. 그래서 남자들한테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누구든지 수수께끼 세개를 맞히면 자기 남편이 되겠지만
못 맞히면 하나 밖에 없는 목을 내놓아야 한다고 공포한다.
많은 신청자들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간다.

27번 째로 칼라프 (Calaf) 가 나타난다. 나라를 빼았기는 바람에 왕자로 있던
칼라프는 부왕과 헤어져서 도망다니다가 이 나라에 흘러 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극적으로 부왕을 다시 만난다.
늙은 왕은 그동안 젊은 여자 류 (Liu) 의 보호를 받아 왔다.
칼라프는 류한테 어찌 거지 노릇까지 해가면서 왕을 섬겨왔느냐고 묻는다.
류는 아리아 ‘왕자님, 들어보세요’ (Signore, ascorta) 로 대답한다.

저는 노예였지요 /
오래 전에 당신이 저를 쳐다보고 웃어 주었어요 /
그때부터 당신 이름을 가슴에 새겨 두었지요 /
제 영혼에도 제 입술에도요. 

칼라프는 투란도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부왕과 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청혼을 한다. 투란도는 수수께끼를 낸다:

첫째, 매일 밤에 태어나서 다음날 새벽에 죽는것은  무엇이냐?
둘째, 불꽃처럼 붉고 뜨겁게 타고 있지만 불이 아닌 것은 무엇이냐?
세째, 얼음이 너에게 불을 주고, 네가 받은 불이 이 얼음을 더 차게 만들며,
더 차진 얼음이 너를 노예로 만들면 너는 왕이 된다. 이 얼음은 무엇이냐?

칼라프는 ‘희망’, ‘피’, ‘투란도’ 라고 수수께끼를 푼다.
그러나 투란도는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못하겠다고 한다.
칼라프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당신이 제 이름을 알아 맞히면 제 목숨을 드리지요.
그러면 저와 결혼할 필요가 없지요.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드리겠어요.”
투란도가 내일 아침까지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선포하자
칼라프도 자신 만만하게 ‘아무도 잠들지 마라’ (Nessun dorma) 를 부른다:

아무도 잠들지 마라 //
공주여, 당신도 / 별들을 쳐다 봐요 / 사랑과 희망으로 떨고 있지요 /
내 신비는 나만이 알고 /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지요 /
아침 빛이 내려 쪼일 때 / 내 이름을 알려 드리지요 /
나의 키스는 그대의 찬 가슴을 녹이고 / 그대를 내 것이 되게 합니다 //
밤이여, 사라져라 / 별들아, 들어가거라 /
해가 뜨면 나는 승리한다 / 승리하고 만다.

파바로티의 18번이다. 1990년에 세계 축구 대회가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이를 담당한 BBC 는 파바로티가 1972년에 녹음한 이 아리아를 주제곡으로 삼았다.
그때부터 전 세계의 애창곡 제일번이 되었다.
많은 유행가 가수와 크로스오버 (crossover) 가수들도 불렀다.
크로스오버란 브라이트먼 (Sarah Brightman) 이나 보첼리 (Andrea Bocceli) 같이
유행가도 부르고 고전 음악도 부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같은 가수를 말한다.

영화 주제곡으로도 많이 쓰였다. 이 아리아를 즐기지 못한다면
어느 아리아도 즐기지 못할 만큼 아름답고 황금과 같은 노래다.

각설하고, 투란도는 류를 잡아온다. 칼라프의 이름을 대라고 고문한다.
류는 긴 아리아 (Tanto amore segreto) 를 부른 후에
심한 고문으로 이름을 실토할까봐 자살한다. 후반 부만 소개한다.

공주님, 지금은 얼음같이 차지만 / 화염으로 녹아서 /
저분을 사랑하게 될거예요 / 저는 입 다물고, 새벽이 오기 전에 죽겠어요 /
저분은 승리합니다 //
아 나는 저분을 다시는 못 보겠구나.

푸치니는 후두암 치료 받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여기까지 작곡하고 끝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알파노 (Alfano) 가 완성했다.
토스카니니는 초연할 때 이 장면이 끝나자 지휘봉을 멈추고
“푸치니는 여기서 펜을 놓았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공연을 중단했다.

각설하고, 칼라프는 투란도가 사랑 없이, 자기한테 오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한번 더 모험을 한다. 자기 이름을 미리 알려 준다.
동이 트고 판결의 시간이 온다. 투란도는 “저자의 이름은 칼라프요” 라고 말하지 않고
“그대의 이름은 사랑이요” 라고 선언한다.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여인 류를 통해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칼라프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얼음장 같던 마음이 녹아 버렸던 것이다.

푸치니는 그의 오페라에서 가련한 여인들을 많이 죽였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이것 때문으로도 일부 평론가 한테서 비난을 좀 받았다.
죽음의 슬픔과 달콤한 멜로디로 청중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면서,
예술에 앞서 청중한테 아부를 했다는 것이었다.

베르디나 바그너에 비해서 예술성이 좀 떨어질 지는 몰라도,
그의 멜로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승들이 제자들한테 박자, 화음, 구성등 모든 면을 가르쳐 줄 수는 있어도
멜로디는 어떻게 작곡해야 되는지를 아르켜 주지를 못한다.
제일 힘든 이 멜로디를, 푸치니는 타고났다.

혹자로 부터 몇 십년이 못 가리라는 악평을 받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루어진 그의 3대 오페라는 불후의 명작이 되어,
세계적으로 제일 인기가 좋은 10대 오페라에 항상 군림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문학과 예술은 낭만주의 (Romanticism) 에서
寫實主義 (Realism) 로 바뀌었다. 신화, 전설, 왕, 귀족, 기사들의 이야기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평민의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무대가 궁전에서 뒷골목으로 옮겨진 것이고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 이 사실주의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오페라에서는 사실주의를 베리즈모 (verismo) 라고한다.
광범위하게 보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나
비제의 <카르멘> 에서 시작해서 푸치니의 <라 보엠> 이나
<토스카> 에서 끝났다고 볼 수 있고 , 본격적 작품으로는
그 중간에 나온  마스카니 (Mascagni) 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와
레온카발로 (Leoncavallo) 의 <팔리아치> 라고 할 수 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는
시칠리아 섬 어느 마을 이야기다.
투리두가 군대에 가자 애인 롤라는 알피오에게 시집을 간다.
투리두는 제대 후 산투차와 약혼하게 되는데 이에 질투를 느낀
롤라가 투리두를 다시 유혹한다.
산투차는 투리두에게 애원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화가 나서 알피오에게 둘의 관계를 폭로한다.
알피오는 결투 중에 투리두를 칼로 찔러 죽인다.

<팔리아치> (Pagliacci) 는 순회 극단 이야기다.
단장 겸 광대인 카니오는 어려서 데려와 키우다시피 한 부인이
어느 마을 남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카니오는 부인과 무대에 올라 극을 하게 되는데 내용 자체가 자신이 부인을 죽이는 것이다.
카니오는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부인을 정말 칼로 찌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제 희극은 끝났습니다” 라고 절규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현대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만들었으나
어느 오페라도 <투란도트> 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 그래도 계속 공연되고 있는 것은 거슈윈 (Gershwin) 의
<포기와 베스> (Porgy and Bess) 인 것 같다.

<포기와 베스> 는 1920년 경 흑인 빈민가 이야기다.
건달 크라운은 정부 베스와 함께 나타나 도박하다가 살인을 하고 도망간다.
베스는 앉은뱅이 거지 포기와 함께 새 삶을 시작한다.
크라운은 베스와 다시 살려고 나타났다가 포기에게 찔려 죽는다.
형사가 와서 크라운의 검시에 입회시키기 위해 포기를 체포한다.
마약 밀매인이 마약으로 베스를 유혹하여 뉴욕으로 데리고 간다.
일주일 후에 무사히 돌아온 포기는 불구의 몸을 이끌고
베스를 찾으러 멀고 먼 뉴욕으로 떠난다.

잘 알려진 <포기와 베스> 에 나오는
자장가 ‘서머타임’ (Summertime) 을 불러보자.

여름 날 / 삶은 평온해 /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 목화는 부쩍 자라지 //
네 아빠는 부자 / 네 엄마는 미인 /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고 / 조용히 있으렴 //
훗날 어느 아침에는 / 너도 커서 노래할 거야 /
그때 너는 날개를 펴고 / 하늘을 날게 되겠지 //
그 날이 오기 까지는 /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해 /
아빠와 엄마가 언제나 네 곁에 있으니까

‘서머타임’ (Summer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