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제2부 <발퀴레> 와 제3부 <지그프리트>”

by Jason Kim
1.4K views

 

 

장용복의 오페라 산책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2부 <발퀴레> 와 제3부 <지그프리트>”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83) 는 50여세까지 빚에 시달렸다.
수입이 많지도 못했지만 쓰임새도 컸던 것이다. 빚쟁이의 성화로 여러번 외국으로 도주해 살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바리아의 왕 루드비히 2세였다.
환상의 세계에서 살던 소년 왕자 루드비히는 15살에 바그너의 <로엔그린> 과 <탄호이저> 를 보고
바그너를 숭배하다가 18살에 왕이 되자 후원자가 되었다.
빚을 갚아주고 ‘카르트 블랑쉬’ (carte blanche) 크레딧 카드를 주어
오페라를 작곡, 공연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나중에는 호화로운 저택을 사주었으며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이 완성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여해 주었다.

<니벨룽의 반지> 는 루드비히 왕 후원으로 인하여 끝을 볼  수 있었고,
4부 전체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개관 날에 초연될 수 있었다.    

 

  제2부는 <발퀴레> (Die Walkure) 이다.

<발퀴레> 는 제1부 <라인강의 황금> 이 끝나고부터  대략 25년 지나서 시작한다. 

그동안 보탄은 대지의 여신 에르다 (Erda) 와 정을 통해서 브린힐데 (Brunnhilde) 를
위시해서 아홉명의 딸을 낳았다. 이들은 다 자라서 신들의 보금자리인
궁전을 보호하려고 지상의 영웅들을 모집한다. 전쟁터를 찾아 다니면서
죽은 장수들을 선택하여 궁전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이 딸들을 발퀴레라고 부르는데,
관현악 ‘발퀴레의 기행(騎行)’ (The Ride of Walkures) 에 맞추어 말타고
다니면서 ‘호조토호’ (Hojotoho)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발퀴레의 기행’ 은 오래 전에 나온 영화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에서
헬리콮타 부대가 베트콩 마을을 폭격할 때 실감나게 나와서 널리 알려졌다. 

그동안 보탄은 인간 세상에 또 내려와서 에르다 말고도 어느 여인과 살면서 쌍둥이 남매를 만들었다.
지그문트 (Siegmund) 와 지그린데 (Sieglinde) 이다. 보탄은 지그문트가 자라서
거인이 가지고 있는 황금 반지를 라인강에 돌려주기를 바란 것이다.
남매는 어려서 헤어지게 되었다. 지그린데는 자라서
강제로 훈딩 (Hunding) 의 부인이 되어 살고 있다.

<발퀴레> 막이 오르면, 지그문트가 훈딩의 일당에게 쫓기다가
지그린데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남매가 해후상봉한다. 남매는 첼로의 독주를 들으며
사랑이 싹트고, 사랑의 아리아를 부른다:

Klaus Florian Vogt singing “Winterstürme wichen dem Wonnemond” from DIE WALKÜRE

(지그문트) 겨울 폭풍이 오월의 달빛에 쫓겨 사라지고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nmond) /
봄이 사랑의 빛으로 빛납니다 / 봄 바람은 숲과 초원으로 불어와 신비로움을 더해 줍니다 /
새를 통해 노래 부르고 / 따듯한 피로 꽃을 피우며 / 활력으로 싹을 트게 합니다 / … //
가슴 깊히 숨어있던 우리의 사랑이 / 폭풍으로 인해 헤어져 있던 사랑이 /
환희속에서 결합합니다 / 사랑이 봄과 합치듯이.

(지그린데) 당신이 바로 봄이어요 (Du bist der Lenz) / 오랜 냉혹한 겨울 동안 기다리던 봄이지요 /
내 심장은 뛰고 / 당신의 눈길로 나는 꽃처럼 피어납니다 /… 

바그너의 오페라에는, 초기 오페라를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아리아가 별로 없는데,
위의 ‘겨울 폭풍은 지나가고’ 는 전통 아리아와 별다름 없는 아리아이다.

지그문트는 벽에 꽂혀있는 칼을 빼어 들고 지그린데와 같이 도망을 간다.
(이 칼은 보탄이 지그문트가 쓰라고 전에 꽂아 놓았던 것으로 영험이 있는 보검이다.)
지그문트는 쫓아온 훈딩과 결투하게 되는데,

이 결투에 보탄은 지그문트 편이다. 하나밖에 없는 친 아들이니까.
또 자신이 못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니까. 그래서 브린힐다에게 지그문트 편을 들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보탄의 부인은 훈딩 편이다. 왜냐하면 지그문트는 남편이 바람피워 만든 아들이니까,
또 자신이 신성한 결혼의 여신으로서 남매 끼리의 불륜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탄은 부인의 결사적인 반대로 딸 브린힐데에게 훈딩 편을 들라고 명령을 번복한다.

브린힐데는 두 남매의 사랑에 감복하였고 또 아버지의 속 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명령을 거역하고 지그문트 편을 든다. 화가 난 보탄은 결투장에 몸소 나타나
지그문트의 칼을 부러트려서 훈딩 칼에 맞아 죽게 한다.

브린힐데는 지그린데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다.
(거인이 동굴에서 용으로 변해서 황금 반지를 끼고 있는 숲인데 보탄은  계약 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브린힐데는 보탄의 명령을 어긴 벌을 받는다: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위 산에서 잠자다가 그녀를 발견하는 인간의 부인이 되는 것이다.
브린힐데는 보탄에게 청원한다.  

제 잘못이 그렇게 수치스럽고 / 천한 짓이고 /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까? /
그래서 이렇게 수치스러운 벌을 / 천하게 되는 벌을 / 제 명예가 박탈되는 벌을 받아야 합니까? //
아버지 제 눈을 보시고 / 분노를 풀어 주세요 / 고집을 버리세요 /
제 잘못을 다시 이해해 주시고 /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버리지 마세요.

요지부동한 보탄에게 브린힐데는 마지막 청원을 한다.

제발 불쌍한 딸의 이 청만은 꼭 들어주세요 /
제가 잠자게 될 바위 주위를 무서운 화염으로 둘러 주세요 /
두려움을 모르는 영웅만이 화염을 뚫고 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지요.

보탄은 엄격한 신의 우두머리에서 다정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온다.
제일 큰 기대를 걸었던 아들 지그문트를 잃어버리고 나서,
이제는 제일 사랑해 오던 딸 브린힐데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보탄은 딸을 껴안고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Wotan’s farewell: Leb wohl, du kuhnes )

잘 있거라 내 귀엽고 아름다운 딸아 / 너는  내 가슴 속 깊히 간직한 자랑이었는데 /
너를 버려야 하는구나 / 너는 내 옆에서 같이 말타고 다닐 수 없게 되었고 /
잔치에서 나한테 술도 못 따라 주겠으며 / 나는 너의 반짝이는 눈을 못 보겠구나 //
너는 화염에 쌓이게 되는데 / 소심한 자들은 감히 화염을 뚫지 못하고 /
용감하고 겁 없는 영웅 만이 / 신인 나보다 더 자유로운 자 만이 / 나타나서 너를 구해주리라.

보탄은 딸의 눈을 쳐다보면서 억장이 무너진다.

반짝이는 저 눈을 / 내가 얼마나 많이 키스했던가 /
전장에서 이기고 돌아와 내가 껴안아 주었을 때 / 데리고 온 영웅들을 그 입술로 자랑했을 때 /
내가 절망했을 때 / 내가 즐거워하고 싶었을 때 / … //
이제는 자유롭지 못한 이 신이 저 눈을 감기게 하고 /
나보다 더 행운이 있는 인간이 그 눈을 대신 만끽하겠지 /
마지막으로 저눈에 키스를 하자.  

보탄은 브린힐데를 잠들게하고 눕힌 후에
불의 신 로게를 불러 주위에 불을 지르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음악에 맞추어 불바다가 되면서 막이 내린다.

보탄은 오래 전에 한쪽 눈을 희생하고 대신 지혜를 얻었다.
그 지혜라는 것이 결국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어느 여성 철학 교수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지혜, 아름다움, 백만불, 셋 중에 하나를 주겠소.” 라고 하자 여교수는 지혜를 택했다.
타라아! 지혜롭게 된 여교수는 즐거워하기는 커녕 “ 백만불을 택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하였다.   

각설하고, 바그너의 후원자 루드비히 왕은 바그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제3부와 제4부가 완성되기도 전에 제2부인 <발퀴레> 를 공연했다.
바이얼린 주자 요아힘을 위시해서 작곡가 브람스, 상상, 리스트 등등이 참석했다.
리스트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상했는데 “천명의 합창단이 <로엔그린> 의 합창을 천번 부르며
<발퀴레> 를 환영해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감탄! 감탄!” 이라고 바그너에게 편지를 띄었다.
바그너에 비판적이던 평론가들까지도 비상한 예술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발퀴레> 는 4부 중에 제일 사랑을 받고 있으며 따로 독자적으로 공연하고도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에 처음으로 4부 전체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게르기에프의 지휘, 마린스키 극장 제작으로 4일 동안 한 부씩 공연하였다.
그 후에는 한독 수교 135주년 기념으로, 한국인 성악가 에스더 리가 설립한
월드아트오페라가 제작, 그녀의 남편인 독일의 프라이어 (Achim Freier) 가 연출,
에스더 리를 비롯 많은 한국 가수들이 바이로이트 축제 주역 가수들에 합세하여
3년 (2018-20) 에 걸쳐 공연하기로 계획하였는데, 2018년에 제1부를 공연한 후,
본격적인 제2, 3, 4부는 해외 프로덕션과 일정 조율등의 문제,
코로나 바이러스, 등등으로 연기된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작품을 일체 공연하지 않는다.
바그너가 유태인이었지만 반유태주의자 (anti-Semite) 였기 때문이다.
주빈 메타가 1981년에 앙콜 곡으로 연주하였고, 1992년에 배런보임이 공개 연습하였을 뿐이다.
주빈 메타는 앙콜 곡을 연주하기 전에 듣기 싫은 청중은 나가도 좋다고 했고,
배런보임 경우에는 공개 연습 후에 반대 바람이 심해서 본 공연이 취소되었다.

유태인 대학살 생존자들이 남아있던 이스라엘에서 금지 대상이 되어 온 것은 당연하다.
바그너는 “유태인은 그들의 특성을 버리고 우월한 독일인으로 동화하여야 된다” 라고 주장했다.
그는 <음악에서의 유태인> (Judaism in Music) 이라는 기사에서,
유태인 음악가들은 경박한 음악밖에 만들 줄 모른다면서 멘델스존과 마이에르베르를 깎아 내렸다.
유태인을 대학살한 히틀러는 유태인을 미워한 바그너의 음악을 매우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을 반유태인 선전에 이용하였다.
“독일 사회주의를 이해하려면 바그너를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하였다.

제3부는 <지그프리트> (Siegfried) 이다.

<발퀴레> 가 끝나고부터 20여년이 지난다. 그동안 난쟁이 알베리히의 동생 미메는
지그문트와 지그린데의 아들 지그프리트를 용감한 청년으로 키웠다.
(지그문트는 훈딩과 싸우다 죽었고 지그린데는 지그프리트를 낳고 금새 죽었던 것이다.)

지그프리트는 보탄이 반토막으로 낸 칼을 다시 주조해서 새 칼을 만들고,
이 칼로 용으로 변해 있는 거인을 죽이고 황금 반지와 마법 투구를 취한다.

지그프리트는 브린힐데가 불꽃에 둘려 쌓여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만나러 간다.
도중에 방랑자의 모습을 한 보탄을 만난다. 지그프리트는 보탄이 길을 막자
칼로 보탄의 지팡이를 반토막 내버린다. 보탄은 자신이 만들었던 칼,
자신이 지팡이로 반토막을 냈던 칼, 부러졌던 칼로 새로 주조된 칼에 의해서
모든 힘을 잃고 도망친다. 지그프리트는 산으로 올라가서
불꽃을 뚫고 들어가 브린힐데를 깨운다.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2010년 부터 현대식 무대를 비롯,
보이트 (Deborah Voigt) 와 테릴 (Bryn Terrill) 을 등장시켜 새로운 제작을 하여
공연해 왔는데 그 녹음 판이 몇년 전에 그래미 상을 받았다.

보이트는 오래 전에 너무나 비대해서 역에 안 맞는다고 영국 로열 오페라에서 해고를 당했다.
가십을 취급하는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에서는 “오페라는 풍만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
(It ain’t over till the fat lady sings) 이라는 농담을 바꾸어
“쇼는 풍만한 여인이 살을 빼기 전까지는 …” (The show ain’t over till the fat lady slims)
이라고 대서 특필하였다.

보이트는 수술과 다이어트로 135 파운드를 줄인 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재기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도 처음에는 비대하였지만 80 파운드를 줄였다.
소프라노는 특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몸이 풍만하고 가슴이 넓어야 한다는데
다이어트 전후에 소리가 어떻게 달라 졌을까 논란이 많았지만 결론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보이트는 작년에 봉변을 당했다. 이태리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너 죽었다면서” 라는 편지를 받았다. 유명한 이태리 가수 프레니 (Mirella Freni) 의
사망 기사에 보이트의 사진이 잘못 올랐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그너의 여성 편력을, 그 중에서도 추려서 소개한다.
바그너의 첫번째 부인은 여배우 민나 (Minna) 였다. 그녀는 일년 살고 바그너를 버리고
딴 남자한테 갔다가 바그너가 그녀의 여동생과 사귀게 되니까 다시 돌아와서 화해를 했다.
바그너는 나도 질까보냐 하고 여류 시인과 연애하기 시작했다.
이 여인의 남편은 바그너를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바그너는 잘못하다가는 돈 줄이 끊어질까봐 매우 조심하며 사귀었다.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에 충분히 반영되었다. 바그너는 불륜의 관계가 후원자에게는
들키지 않았지만 부인한테 들켜 이혼할 수 밖에 없었다.

바그너는 그후에 자기의 오페라를 지휘해 주던 제자인
뷸로 (Bülow) 의 부인 코지마 (Cosima) 와 관계를 맺고 딸을 만들었다.
친 딸의 대부까지 되었다. 둘을 더 만든 후에 뷸로가 코지마와 이혼을 하자 코지마와 결혼하였다.
코지마는 바그너보다 24살 아래로 바그너의 친구인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아버지이고,
남편을 버리고 리스트한테 온 백작부인이 어머니다.

코지마는 일생을 바그너와 그의 음악을 위해 살았다.
바그너의 음악 활동을 자세하게 일기장에 남겼고,
바그너와 함께 <반지> 오페라를 공연하기에 알맞는 극장까지 만들었다.
바이로이트 (Bayreuth) 에 있는 축제하우스 (Festspielhaus) 이다.
바그너가 죽은 후 코지마가 20년 이상 경영했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는 바그너의 자손들이 맡게 되었다.

처음 가보려는 관람객은 몇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어떤 제작은 십여년 까지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