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바그너: <니베룽의 반지> 제4부 <신들의 황혼>”

by Jas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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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바그너: <니베룽의 반지>

4부 <신들의 황혼>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83) 는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와 동갑내기다.
베르디는 이태리에서, 바그너는 독일에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들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서로 좋아하지 않았다.
베르디는 바그너의 작곡 기교를 부러워했고, 바그너는 베르디의 인기를 시기하였다.
베르디는 “바그너는 걸어가야 좋을 때에도 쓸데없이 날아가려고 애를 쓴다” 라고 평을 했지만,
바그너가 죽자 “위대한 작곡가” 라고 애도하였다. 반면에 바그너는 베르디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베르디는 사재를 털어 ‘음악가를 위한 휴식의 집’ (Casa di Riposo per Musicisti) 을 지었다.
늙어서 힘들게 사는 가수와 음악가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은 저택이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오페라 판권의 수입을 유지비로 사용할 수 있게 유언하였다.
60여명이 살 수 있는 규묘의 저택인데, 현재까지 천명 이상이 살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골에 내려가 땅을 많이 사서 농장을 경영하였다. 농장인들이 살 마을을 샀고
그들에게 보수를 후하게 주었으며 병원까지 세워 건강 관리를 잘 해주었다. 

반면에, 바그너는 자선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자기 오페라를 공연하기에 알맞은 극장을 만들었다.
바이로이트 (Bayreuth) 에 있는 축제하우스 (Festspielhaus) 이다.

베르디의 음악이 이태리 전통을 이어받고, 인기가 대단하고, 간단하고, 보수적임에 반해서,
바그너의 음악은 독일 전통을 이어받고, 심각하고, 복잡하고, 급진적이다.

베르디가 오페라를 발전 (evolution) 시킨데 반해서,
바그너는 오페라를 완전히 혁신 (revolution) 하였다.
엔터테인을 목적으로 한 단순한 음악에서 벗어나서,
종합예술 (total art work)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악, 시, 미술, 건축이 모두 합쳐진 예술이라는 것이다.

베르디는 철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문학 작품을 많이 읽었고,
위고, 바이런, 볼테르, 쉴러, 듀마, 쉐익스피어의 작품을 원본으로 쓰면서
현실적인 인간의 갈등을 그렸다.
반면에 바그너는 오페라에서 철학적 주제를 주로 취급하였고
신화를 통해서 인간의 문제를 다루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 를 읽고 염세 철학에 심취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인생은 고통 (suffering) 의 연속, 뜻대로 살려는 의지 (will) 가 커질수록
깊어지는 고통, 고통스러운 인생의 목적은 결국 죽음,
사는 동안 고통을 줄이기 위한 예술은 의지의 목소리인 음악 ” 이라 하였다.
그당시 바그너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몸이 너무 쇠약해서 자살할 생각까지 했고,
혁명에 참여했다가 쫓겨나 외국에서 살았고, 부인 민나와는 금이 갔고,
유부녀와의 정사는 안타까웠고, 재정적 후원과 흥미가 없어서
<반지> 일부의 공연을 중단하고 있었다. 염세 철학에 빠지지 않을수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와 <반지> 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반영했고,
<탄호이저> 에서는 신성한 사랑과 속된 사랑을 비교하였고,
<파르지팔> 에서는 기독교를 취급하였다.

베르디와 바그너의 음악의 우월을 가리는 것은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좋고 싫고’ 를 알아보면 음악계에서나 음악을 잘아는 분들은
바그너 편이 조금 더 많고,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베르디 편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제4부는 <신들의 황혼> (Die Gotterdammerung) 이다.

지그프리트는 브린힐데로부터 여러가지 능력을 이어받은 후에
세상에서 제일 가는 영웅이 되기 위해서 공을 세우러 떠난다.
헤어지면서 브린힐데에게 사랑의 징표로서 황금 반지를,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타던 말 그라네 (Grane) 를 준다.

지그프리트는 관현악 (Siegfried’s Rhine Journey) 에 맞추어 라인강변을 따라 여행하다가
난쟁이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 (Hagen) 이 살고 있는 성에 들어온다.
(보탄이 반지를 라인강에 돌려 주려는 목적으로 지그문트를 만들었듯이,
알베리히는 빼았겼던 반지를 도로 찾으려는 목적으로 하겐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겐은 성주 군터 (Gunther) 와 성주의 여동생 구트루네 (Gutrune) 에게
결혼을 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중이다. 군터에게는 브린힐데가,
구트루네에게는 지그프리트가 적격이지만, 브린힐데는 화염에 쌓여있어서
군터 실력으로는 안 되고  지그프리트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형편임을 알려준다.
우선 자신이 만든 묘약을 지그프리트에게 마시게 해서 과거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구트루네를 사랑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지그프리트는 구트루네가 주는 묘약을 마신 후 구트루네를 사랑하게 되고,
군터와는 의형제를 맺는다. 브린힐데를 군터의 부인이 되게 하려고
불 붙고 있는 바위 산으로 들어가서 마법 투구를 쓰고 군터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불을 뚫고 들어간다.
브린힐데는 지그프리트가 돌아온 줄 알고 반기려다가
낯선 군터를 보고 놀란다. 가짜 군터는 브린힐데가 자기 아내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반지를 빼앗고, 진짜 군터에게 그녀를 인계한다.

브린힐데는 군터에 끌려 궁에 돌아오는데, 미리 와서 구트루네와 같이 있는
지그프리트를 보고 배신당한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지그프리트가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내막을 알게된다. 분노한 브린힐데는 하겐의 술수에 빠져 지그프리트를 죽이라고 하면서,
지그프리트의 유일한 약점인 등을 찌르라고 알려준다.

지그프리트는 사냥 도중에 동행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다가
묘약의 효과가 없어져 기억이 살아나는데, 하겐의 창에 등이 찔린다.
지그프리트는 죽어가면서 브린힐데를 회상한다:

브린힐데, 신성한 신부여 / 깨어나 눈을 떠요 / 누가 당신을 또 재웠소? /
그대를 깨웠던 내가 왔소 / 내 키스로 당신을 깨웠었지요 / 지금, 다시 한번 더 깨웁니다 /
(독백) 브린힐데가 황홀하게 웃으면서 눈을 뜨는군 / 그런데 나는 죽고 있지 /
그래도 감미롭고 행복해 / 브린힐데가 다시 나를 반기고 있어.   

지그프리트의 시체는 부하들에 의해 궁전으로 돌아온다.
오케스트라는 엄숙한 ‘장송 행진곡’ (Siegfried’s funeral march) 을 연주한다.
‘딴딴 / 딴딴 / 따라라라라라’ 를 ‘딴딴’은 금관 악기가 ‘따라라라라라’는 현악기가 계속 반복한다.  

Proms 2013 Wagner Götterdämmerung Siegfried’s Funeral March

브린힐데는 반지를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군터와 하겐,
자기를 힐난하는 구트루네를 향해 질책을 하고, 병정들에게 화장 준비를 시킨다:

쓸데 없는 소리 그만들 하시오 //
세기의 영웅이 죽었는데 / 탄식하기는 커녕 / 밀크를 흘리고 /
어머니한테 보채는 어린애 같구려 / 여러분들은 모두 나를 배반하였소 /
배반당한 이 여인은 복수해야 되겠소  //
(병정들에게) 라인강변에 장작을 높이 쌓아 올리시오 /
불을 피워 고귀한 영웅의 시체를 화장합시다 / 또 그의 애마를 끌고 오시오 /
나도 그 말을 타고 불 속에 들어가 같이 재가 되려오 / 영광스럽게 같이 죽으려 하오.

      브린힐데는 긴 독백을 한다:

(지그프리트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이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 /
가장 순수했고 나를 순수하게 사랑했는데 / 충실한 아내를 배반했구나 /
(하늘을 쳐다보면서) 왜 배반했는지 아시오? / 위대한 보탄이시어 / 외면하지말고 /
고뇌에 찬 나의 탄식을 들어 보시오 / 그리고 당신의 죄악을 깨달으시오 /
이 영웅을 통해 / 당신들에게 내린 저주를 없애려고 / 이 영웅을 희생시켰소 /
진실된 희생자는 나를 배반해야만 했고 / 그래서 고뇌를 통해 나를 현명한 여인이 되게 하였소 /
이제야 당신들의 뜻을 다 알았소 / 당신의 사자 까마귀를 돌려 보냅니다 /
당신이 두려워하면서 기다리던 소식을 들어보시오.   

화장터로 실려가는 지그프리트의 손에서 황금 반지를 빼내어
자신의 손에 끼면서 라인강의 요정들을 향하여:

이 저주 받은 반지는 / 내가 유일하게 받은 유산이오 //
현명한 요정들이여 / 이 저주 받은 황금 반지 / 돌려 줄테니 /
재가 된 내 손에서 빼 가시오 / 반지에 붙은 저주는 / 화염으로 타버리고 /
강물로 씻겨질 것이오 / 영원히 안전하게 보관하시오.     

횃불을 들고 보탄의 사자 까마귀들에게 명령한다 (Fliegt heim, ihr Raben):

돌아가거라 / 여기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너희 주인에게 알려라 /
내가 자고 있던 바위에 들려서 / 아직도 불태우고 있는 로게에게 /
궁전으로 돌아가라고 일러라 /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신들에게로 /
화염으로 궁전의 영화를 태워 버리라고 //
신들의 황혼이 왔도다 / 이 횟불을 신들의 궁전에 던지노라.

횃불을 장작 더미에 던지고 나서,

(그라네에게) 불 속으로 / 네 주인, 내 영웅이 있는 곳으로 가자 /
내 심장이 타는구나 / 내 영원한 애인을 포옹하러 / 애인의 품에 안기러 /
열렬한 사랑을 영원히 하러 /
(지그프리트에게) 당신의 신부가 갑니다 / 행복에 젖은 신부를 반기시오.

말을 타고 불 속으로 들어간다. 라인강의 세 요정들이 잿더미에서 반지를 찾고 춤을 추는데,
하겐이 빼앗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지그프리트와 브린힐데를 태운 불은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삽시간에 퍼져서
신들과 영웅들이 사는 발할라 궁전을 완전히 태운다.

7

그동안 오케스트라는 여러 라이트모티프를 섞어가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한 소리로 연주하다가
‘사랑에 의한 구원’ (Redemption by Love) 으로 끝을 맺는다.

권력을 쥐려고 반지를 소유했던 자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고,
브린힐데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에 의해서, 신의 세계는 끝나고,
새로운 인간의 세계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들의 황혼’이 끝나고 ‘인간의 여명’ 이 밝아오는 것이다.

드디어 길고 긴 오페라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이 마지막 음악이 끝나자, 나는 마치 감방에서 풀려나온 것처럼 느꼈다” 라고
차이콥스키는 말했다.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야기를 그리며 퍼지는 화음의 교향악,
심금을 울리는 연속의 선율에 심취되었다가 깨어나면 질문이 생긴다.
반지가 본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왜 신들이 멸망해야 했는가?

비그너는 처음에, 그러니까 아주 젊었을 때, 다음과 같이 해피엔딩으로 끝냈다고 한다:
브린힐데는  지그프리트의 시신을 가지고 신의 궁전으로 가서,

신들이여 들어 보세요 / 내가 가지고 온 이 시신에게 감사하십시오 /
이 인간은 자신을 희생해서 / 당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무효화하여 /
당신들을 구원하였습니다 / 보탄이어,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신입니다.

그런데 왜 영원히 살 신들을 죽이고 끝을 비극으로 바꾸었는가?
바그너 자신의 설명을 들어 보면: “신들의 몰락은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느낌’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느낌대로 결말을 지었다” 라고 설명했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승화하려는 테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에서도 나온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지그프리트와 브린힐데처럼, 죽으면서 영원한 사랑을 저승에서 바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했던 바그너의 소산이다.

그동안 길고 긴 <니벨룽의 반지> 를 감상하다보니 필자의 글도 길어졌다.
바그너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평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니체: (바그너의 오페라와 사상에 열광했을 때) “바그너의 오페라는 미래의 음악이다.”
(바그너와 금이 갔을 때) “바그너가 인간이야? 병균이지. 그가 만지는 것은 모두 감염이 되.
음악도 병들게 했어. 바그너의 예술은 병들어 있다.”

로시니: “바그너의 음악은 훌륭한 순간이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형편 없다.”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는 한번 들어서는 평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두번 다시 듣고 싶지도 않다.”

오스카 와일드: “나는 어느 오페라 보다도 바그너의 오페라를 더 좋아한다.
그의 음악 소리는 너무 크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떠들어도 남들이 알아 듣지 못한다.”

번슈타인: “나는 바그너를 싫어해, 그러나 지금 무릅을 꿇고 있다.” 

비제: (젊었을 때) “저 음악 속에는 아무 것도 없어” (나이가 들고서)
“어느 작곡가 보다도 훨씬 위대한 작곡가다.”

푸치니: (처음에는 비아냥거리다가 ) “바그너는 우리들을 만돌린이나
켜는 음악가처럼 보이게 한다.”

 

<마침글>

지난 5개월 동안 베르디와 푸치니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동창회보를 통해서
동문 여러분들과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신 김정선 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회장님은 매 편마다 독자들이 읽기 쉽게 편집을 잘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아리아와 관현악의 동영상을 정선하여 첨부해 주셔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잘 메꾸어 주셨다.
꾸준히 읽어주신 수백명의 독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