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세대가 본 시위문화:
촛불시위, 촛불혁명과 시카고 폭동
<시작하며>
현 정부는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였다. 짐작컨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촛불시위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같다. 몇년전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을 즐기고 촛불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군중들은 밝은 표정들이었다. 젊은 남녀 커플들과 부모를 따라 나온 꼬마들 모습,
아기가 탄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의 모습은 밝고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60년대 말 미국 서부
도시에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머리에는 꽃을, 샌프란시스코”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던 반전시위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i
그러나 4년이 지난 오늘 우리 도시들은 그 때의 낭만과 여유는 찾기 어렵고 계층과 지역 간의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국회에서의 여야의 대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정과 사법부마저
양극화된 대립과 갈등을 보는 국민은 불안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편 몇년전에 촛불시위를 하던 시민들은 현 정권이 촛불의 시위의 정신으로 혁명을 이어간다고
공언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을까? 아마 많은 시위자 중에 정의와 자유를 노래하던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은, 한 편에서 현정권이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는 혁명의 흐름을 보고 “우째 이런 일이”라며
놀라서 할 말을 잊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4.19 세대와 보수주의의 실종>
4.19 학생 운동은 우리 역사에 전무 후무한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국제 정세를 통찰한 예언자이며
애국자인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하야하게 만들었다. 십여년 전 4.19 기념회의 부탁으로 4.19를 회고한
적이 있다. 그 때 글을 쓰면서 필자는 4,19는 기록되어야 할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 결과가 자랑스럽게
‘기념’을 할 만한 것이었나에 대해 자문하여 보았다. 60년 전 아득한 기억이지만 3학년 학생대표였던
필자는 그날 준비없이 광고와 연설을 하고 마당에 모여 있던 학생들과 함께 청량리를 거처 광화문까지
악을 쓰고 뛰면서 시위하던 기억이 난다.
4.19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와 성장정책을 통하여 특별히 많은 기회가 주어진 행운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4.19와 5.16 기억을 뒤로하고, 가발을 들고, 서투른 외국어로 세계를 누비고,
남의 기술을 구걸하여 공장을 세웠다. 또 이와 같은 개척적인 시대의 조류를 타고 선진학문을 해외에서
연마할 수 있는기회도 넓게 열렸다. 우리 세대는 1960년대 100불 수준이던 소득이 그 후 60년동안
300배로 폭발하는 꿈같은 성장을 경험했다. 이 세대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노력과 창의와 경쟁
그리고 용기를 통해서 우리의 선대가 삼대(三代)에, 아니 삼백년에 걸쳐서도 이루기 어려운 변화를
삼십년만에 이룬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실제로 셋방살이하던 이웃이 기업을 일으키고,
그것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가는 것을 본 산 증인들이다. 이를테면 이론과 이념의 정치(精緻)한
허상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와 시장 경쟁이 성장과 배분의 정의를 가져다준다는 경험을 한 세대이다.
이 세대는 땀흘려 일하면 윤택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땀흘려 일했고 그 수확을
거두었다. 우리는 당당하였고 감사하였다. 단지 우리가 물질적 빈핍(貧乏)에서 벗어나는데 몰입한
나머지 먹고 사는데 만족하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심어준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노력 없이
자유의 귀중함과 시장체계의 위대함을 후배들에게 전하는데 등한하였다. 이것이 모두
‘가난이라는 유산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과오였고, 가슴 아픈 결과를 초래하였다.
영미 보수주의의 비조(鼻祖)인 버크(Edmund Burke)는 두 세기 전에 보수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경고하였다. 보수주의는 혁신을 지속해야만 천박하고 오만한 혁명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개혁으로 쇄신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보수주의의 정신은 보수의
태만으로 쇄락(衰落)하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낡은 이념으로 무장한 나이든 운동권이다.
<40세에 보수의자가 아니면>
그 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책은 자신들이 신봉하고 다져온 색바랜 낡은 정치이념에
치우쳐 있다. 이것은 일부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질적인 결과를 얻는데
실패하고 있다. 현정부가 어설픈 환경논자들의 주장에 따라 추진한 탈원전 정책, 민족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감행한 국방 안보체계의 훼손, 스스로 국제적 미아의 신세를 자초한 외교 정책, 균형 정책이라는
명목의 토지, 주택 정책과 지역 정책 등은 모두 실패한 정책 사례이다.ii
현 집권 세력은 오랜동안 사상과 이념적 틀을 굳게 다져왔다. 이념에 치우친 지식인들이 주도한 정책은
시장기능을 왜곡함으로서 산업의 경쟁력과 국민 복지의 향상에 찬 물을 끼얹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어느 정권에서도 이와같이 연속적인 정책 실패는 없었다. 또 어떤 정권도 현 정권처럼 현실적 문제
해결을 경험이 없이 자신들의 지식과 이념의 우월성을 맹신(盲信)하고 정책과 집행을 독점한 정권은 없었다.
따라서 촛불시위가 지향하던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개방성과 투명성이라는 정당한
절차와 거리가 먼 완고(頑固)한 사상과 이론의 틀로 무장한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부드럽게 펄럭이던
자유롭고 개방적인 촛불시위의 전주곡 뒤에 이고메니아(egomania)들의 배타적인 주장과 이념적 정책이
판을 벌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반대 여론이나 사상적 훈련이 없는 보수의 불만은 현 집권층의 관심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지도 조직적이지도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전임자 존 아담스의 것이라고 한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있다. “20세에 급진
자유주의자liberal)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자요, 40세에 점진적 자유주의자(conservative)가 아니면
골이 빈 자이다”라는 것이다.iii
<시카고 폭동의 주역들>
4.19와 386세대의 시위, 그리고 시카고 폭동이 발생한 원인이나 시대와 정치 사회적 배경은 다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의 핵심 인사들의 인생행로를 들여다 보는 것은 필자의 호기심을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의 인생행로를 살펴 보면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국의 4.19 이후 8년이 지난 1968년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이 도화선이 되어 미국 전역에서
반전 및 소수민족 차별 반대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특히 민주당 전당 대회가 열린 시카고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시위기간 이틀 중에 2,150명이 체포되고, 사망자 11, 그리고 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들 시카고 시위 주동자들이 젊은 날에 가졌던 이상과 열정을 훗날 정치참여를 통하여 실천하려고
시도했는지 또 그들의 인생행로가 우리나라의 시위 주역들과 얼마나 유사한지도 흥미롭다.
시카고 시위의 주동자는 “시카고 7인”으로 알려졌다. 그 중 델린저를 제외하면 1968년 당시 모두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루빈은 시위를 주도한 몇 년 후 월가에서 일하면서 애플에 투자하여 30대초에 거부가
되었댜. 와이너와 프로안은 대학에서 화학 교수로 독극물 관리 연구를 하였다. 헤이든은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 제인 폰다와 결혼하여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을 지냈다. 학생민주연합의 대표였던 데이비스는
종교 자선기구에서 일했다. 당시 50세였던 시민운동가 델린저는 “예일에서 감옥으로(Yale to Jail)”라는
재치있는 저서등 저술활동을 하다가 2004년에 88세로 버몬트에서 생을 마쳤다. 환각제 과다복용으로
57세에 사망한 호프만을 제외하면 평범한 시민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분명한 것은 시카고 폭동의
주역들은 생업에 충실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
4.19세대의 몇 사람은 학생운동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한 분이 몇 사람 있었으나 그 숫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다만 386세대의 현실 정치 참여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 동안 30여년간에도 그랬지만
특히 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중앙과 지방 의회, 사법부와 행정부에 수를 가늠할 수 없이 많은 것이 특이한
일이다.
<끝으로>
우리 사회는 지난 몇년간 양극화되었고, 그 대립은 시간이 갈수록 첨예화되어가고 있다. 현정권은 화석화
된 이념을 가지고 적폐 청산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과거는 정체된 것이고, 적폐 청산에
매달리는 동안 스스로가 화석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바로 청산되어야하는 적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대한 실책은 이들은 과거 적폐의 청산 과정에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인 자유
자본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극우보수집단을 형성하기에 좋은 토양이 된다. 건국 후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의 전통과 체제가 훼손되어 무기력해지면 과격한 혁명세력에 걸맞는 극단적 이념과
투쟁적인 조직을 가춘 보수집단이 출현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좌우의 극한대립을
몰고 올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좌우 노소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모색하여야 한다.
닉슨의 경제고문이던 경제학자 스타인(Herbert Stein)은 “78세에도 자신을 보수주의자(conservative)나
자유주의자(liberal) 로 자처한다면 그 자는 꽉 막힌 자이고 자신의 편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하였다.
많은 우리 4.19 세대는 벌써 80을 넘었다. 그러나 그 나이에 가서야 깨닫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보수’와 ‘혁명적인 개혁을 지향한다는 자유주의’는 둘이 아닌 하나로
연결되는 좌표로서 인식하여야한다는 것이다. 이념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국민의 복지와 행복의 해법은
양극단에서가 아니라 양쪽의 장점을 균형있게 조합하는 위치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집체주의와 계급독재는 근원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Notes
i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ii 필자는 Argonne National Laboratory 에서 지난 세기의 체르노빌과 Three Mile Island 등 연구
프로잭트에 참여하였고, 국토개발원에서 주택 및 지역정책 연구를 총괄 또는 참여한 바 있다.
iii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는 자유주의(liberal)를 급진적 자유주의로, 보수주의(conservative)를 점진적
자유주의로 해석한 것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