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 칼럼
2020.11.30
푸치니(3):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의 <나비 부인> (Madama Butterfly) 을 소개한다.
쵸쵸상은 16세의 일본 게이샤이다.
‘쵸쵸’ 는 나비, ‘상’ 은 씨 또는 부인이란 뜻이니까 ‘나비 부인’ 이다.
아버지가 자결한 후 가세가 기울어 어린 나이에 직업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중매쟁이의 주선으로 미국 해군 장교 핑커튼 (Pinkerton) 과 결혼을 한다.
핑커튼은 결혼식에 참석한 재일 미국 영사에게 ‘세상 돌아다니며’ (Dovunque al mondo) 를 부른다.
양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세상 돌아다니며 쾌락을 추구합니다 /
가는 곳마다 꽃을 꺾어야 하지요 / 모든 재간을 써서 언제나 성공합니다 //
오늘은 이 소녀와 결혼합니다 / 사랑인지 육욕인지 잘 몰라도 매혹되었습니다 /
즐기는 것이지요 / 미국 여인과 정식으로 결혼하는 날까지.
쵸쵸상은 핑커튼을 점점 더 사랑하지만, 핑커튼은 필요로 결혼했을 뿐
일본에서의 복무를 마치고 미련 없이 미국으로 돌아간다.
쵸쵸상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외국인과 결혼했다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가족과 이웃으로 부터 눈총을 받는다.
애는 무럭무럭 자라고 돈은 점점 줄어든다. 중매쟁이는 재혼하라고 한다.
3년이 지난다. 영사는 핑커튼이 본국에서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알려 주려고 쵸쵸상을 방문한다.
(쵸쵸상) 미국에서는 울새 (robin) 가 어느 계절에 둥우리를 칩니까? /
(영사) 별 농담을 다 하십니다 /
(쵸) 여기보다 더 일찍해요 아니면 더 늦게 해요? /
(영) 왜 묻지요? /
(쵸) 남편이 떠나면서 약속을 했어요 / 울새가 둥우리를 다시 칠 때 꼭 돌아 오겠다고요 /
여기서는 벌써 3번을 쳤어요 / 미국에서는 여기서 보다 덜 자주 치는 것 같아서요.
어쩌면 가평의 명기 능운 (凌雲) 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郎去月出來 달이 뜰 때 오신다던 그 임이건만
月岀郎不來 달이 기울어도 임은 오시지 않네
想應君在處 아마도 생각컨데 임이 계신 그곳은
山高月上遲 산이 높아 달이 늦게 뜨는 것일까?
쵸쵸상은 영사에게 애를 보여주며:
아 아이의 이름은 / 지금은 ‘슬픔’ 이지만 /
핑커튼이 돌아올 때면 ‘행복’ 입니다 /
잘 자라고 있다고 알려 주세요.
영사는 너무나 불쌍하고 딱한 쵸쵸상에게
핑커튼이 결혼했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쵸쵸상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의 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어느 맑은 날’ (Un bel di) 을 부른다.
어느 맑은 날에 / 수평선 위로 실같은 연기가 보이고 /
배가 나타날거야 / 항구로 들어 오면 환영하는 대포가 터지고 /
그이가 배에서 내리지만 / 나는 그리로 반기러 가지 않을 거야 /
이 언덕에서 기다릴래 / 오래 기다려도 좋아 //
언덕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겠지 /
누굴까? 와서 뭐라고 말 할까? / 언덕 아래서 나비야 하고 부르겠지 /
난 숨어 있을래 / 놀려 주고도 싶지만 사실은 /
만나면 내가 까무러칠 것 같거던 /
좀 화가 나겠지. “여보, 꽃 향기야” 하고 외치겠지 //
(시녀한테) 지금 말한대로 꼭 될거야 / 의심하자 마 / 그이가 돌아올 것을 나는 꼭 믿어.
드디어 어느 맑은 날 수평선 위로 배가 나타난다.
집 안팍을 모두 꽃으로 장식하고 기다리지만,
핑커튼은 미국 부인을 대동하고 자기 자식을 데리러 온 것이다.
핑커튼은 일각이 여삼추로 3년을 기다려 온 쵸쵸상을 직면할 수 없어서 부인만을 보낸다.
쵸쵸상은:
이 세상에 당신만큼 행복한 여인이 없습니다 /
계속 행복하시고 /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
핑커튼 자신이 몸소 찾으러 오면 아기를 주겠어요 / 30분 후에 같이 오세요.
쵸쵸상도 핑커튼을 직면할 수 없는지, 비참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썼던 칼로 자결한다.
뒤 늦게 온 핑커튼은 시체 옆에서 수치심과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것이다.
청중들은 이런 공연을 감상하며 마음껏 눈물을 흘려도 좋지만
가수들은 눈물을 참아야한다. 그런데 어느 소프라노는 첫번 공연에 참지를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면:
나는 연기자이다. 그러나 가수이기도 하다.
아무리 맡은 역에 심취되어 있을 때라도 내가 무대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내 자신을 컨트롤 못하면 낭패를 면치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나비 부인> 주역을 했을 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끝장나고 말았다. (I was finished)
오래 전에 나온 영화 <모정>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 이 생각난다.
육이오 동란 때 홍콩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중국 여의사와 미국 종군 기자가 사랑을 한다.
여의사는 외국인과 사귀었다고 병원에서 쫓겨난다.
종군 기자는 한국으로 파견 된다. 애인이 폭탄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애인과 헤어졌던 동산에 올라 바다를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나무에 앉는다. 애인이 보내 준 사진에 찍혀 있던 나비와 똑같다.
“너는 그이 타자기 위를 맴돌고 있었지. 날 찾아 왔구나.” 눈물을 거두고 산을 내려간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이 오페라가 <사이공> (Saigon) 이라는 뮤지컬로 둔갑했고
지난 회의 <라 보엠> 은 <렌트> (Rent) 라는 뮤지컬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10대 오페라에 속하지만 초연에서는 참담하게 실패를 했다.
밀라노의 스칼라좌에서 큰 기대로 열렸는데 청중으로 부터 처참한 반응만 받았다.
“<라 보엠> 과 뭐가 달라. 색 다른게 없어!” 로 시작해서 야한 말들이 나오고 휘파람을 불렀다.
평론가들에게서도 좋은 말이 안 나왔다. 왜 실패를 했을까?
푸치니의 적들이 깽판을 놓았다는 설도 있고, 2막이 너무 길었다는 말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청중에게는 동양 무대 장치가 눈에 설었고,
동양 음악이 귀에 거슬렸다는 점이다.
서양 음악이 ‘도레미파쏠라시’ 의 칠음계 (diatonic scale) 를 기초로 하고 있는 반면,
동양 음악은 아프리카 음악과 같이 ‘궁상각치우’ 의 오음계 (pentatonic scale) 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칠음계는 (C 장조일 경우에) 피아노 건반에서 7개의 흰 키(key)에 해당하고,
오음계는 5개의 검은 키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민요인 ‘아리랑’ 이나 흑인 영가인 ‘놀라운 자비’ (Amazing Grace)
같은 곡들은 검은 키 만으로 칠 수가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쇤베르그 (Schoenberg) 가
흰 키와 검은 키를 골고루 써서 12음 기법 (chromatic scale) 을 시도했으니
동양과 서양이 손을 잡았다고 할까?
대폭 수정을 가하고 3개월 만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재연하였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Teatro alla Scala) 관중으로부터 학질을 떼었기 때문에
극장도 베니스의 라 페니체 (La Fenice) 로 옮겼다.
대 성공이었다. 캘러포니아 산불처럼 급속히 전 세계로 퍼졌다.
푸치니의 사생활을 살펴보자.
푸치니는 26살에 유부녀 엘비라 (Elvira) 를 열렬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푸치니로 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아마추어 가수로 자식을 둘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스캔달을 피해 밀라노로 줄행랑쳤다. 푸치니는 같이 살면서
또 어느 여인과 사랑에 빠져 집까지 사주었다.
엘비라의 남편도 유부녀와 바람을 피다가 유부녀 남편에게 맞아 죽게 되자
푸치니와 엘비라는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여유가 생기는 만큼, 이름이 나는 만큼,
푸치니의 여성 행각도 심해졌다. 쏘프라노 가수들을 휩쓸었다.
전에 잠간 언급한 제릿자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엘비라의 질투와 분노로 싸움이 잦았다.
그러던 중에 ‘도리아 (Doria) 사건’이 생겼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구설수에 올랐던 사건이다.
엘비라가 어린 소녀 도리아를 가정부로 들였는데 남편과 그녀의 관계를 의심하고서 강력히 반발하였다.
이에 부담을 느낀 도리아는 푸치니의 집을 떠났고 얼마 안되어 자살하였다.
이를 두고 엘비라가 괜한 의부증을 이르켰다는 주장과
푸치니가 의심받을 만한 짓을 했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다행히 도리아의 유서를 발견했는데, 자신의 시신을 부검하여
처녀인지를 밝혀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부검한 결과 진짜 처녀였음이 밝혀져서
푸치니의 부인이 투옥되었다. 나중에 푸치니가 거금을 들여 부인을 석방시켰다.
이 사건 이후로 푸치니와 엘비라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습관’ 으로 살았다.
후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다. 푸치니의 의붓딸 포스카는 바람을 피다가 도리아에게 들켰다.
포스카는 도리아가 자신의 부정을 누설할까봐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도리아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푸치니의 부인은 여기에 낚였고,
그녀를 의심한 나머지 심한 모욕을 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푸치니는 도리아와 바람을 핀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촌과는 바람을 피고 있었다.
사촌의 후손은 자신들도 푸치니의 혈연이라고 하면서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주장했으나
푸치니 자손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혈연이 있음이 입증되면 각종 재산 분할과 관련된
법적 분쟁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바탕으로
2008년에 <푸치니의 여인> (Puccini e la fanciulla) 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