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제1부 <라인강의 황금>“

by Jas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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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복의 오페라 산책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제1부 <라인강의 황금>”

 

 

 

 

우리에게 ‘아베 마리아’로 잘 알려져 있는 카치니 (Caccini, 1551-1618) 는 페리 (Peri, 1561-1633) 와
함께 처음으로 <다프네> (Dafne) 와 <유리디체> (Euridice) 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2만 8천 편의 오페라가 세상에 태어났다.
이 중에서 제일 긴 오패라가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83) 의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이다.

4부로 되어있다. 제1부는 <라인강의 황금> (Das Rheingold), 제2부는 <발퀴레> (Die Walkure),
제3부는 <지그프리트> (Siegfried), 제4부는 <신들의 황혼> (Gotterdammerung) 이다.

바그너는 이 오페라를 완성하는데 일생을 바치다시피 하였다.
시작한 지 28년 만에 끝을 보았다. 딴 오페라를 작곡하느라고
손을 뗀 8년을 감안한다면 이 오페라에 20년을 바친 셈이다.

대본도 본인이 썼는데, 작곡은 제대로 제1부부터 시작했지만,
대본은 제4부부터 시작해서 꺼꾸로 썼다. 바그너는 훌륭한 작곡가였지
대본을 잘 쓸만한 시인의 자질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 같이 내용을 함축하지 못해서
대본이 길어졌다. 그래서 대본이 먼저 출판되었으나
아무도 이 대본으로 오페라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대본으로 오케스트라에 열광했으니 오페라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오페라가 너무 길고 과대로 팽창했다는 평을 계속 받고 있다.

이 4부작을 하루에 한 편씩 나흘 동안 공연하게 되어 있다. 제1부는 서부 (序部) 로 취급해서
첫날 전야제 (前夜祭) 에 공연한다. 제일 짧은 제1부가  2시간 반,
제일 긴 제4부가 4시간 반, 모두 합해 장장 15시간이다.

푸치니 같으면 반으로 끝낼 내용이 엿가락 늘어나듯 길어졌기 때문에,
여간한 은근과 끈기 없이는, 보다가 도중하차하기가 십상이다.
브라질에서는 언젠가 7시간으로 줄여서 공연했다고 한다.

주역 가수들의 노고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가수 부인이 감독을 찾아와서 “오페라 연습과 공연 중에는 물론이고,
시작하기 전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하려고 들지 않고, 끝나고는 지쳐서 하질 못합니다.
시즌이 한두 달도 아니고, 결혼 생활에 …” 라고 하소연 하였다고 한다.

주역 가수들도 힘들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나흘 동안, 쉴 새가 없다.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도 거의 네시간이나 된다.
슈트라우스가 말년에 자신이 처음으로 이 오페라를 지휘하게 되었다.
마지막 막에 들어서자 피곤한 몸으로, 옆에 있는 악장에게
“이 오페라 너무 길지 않아요?” 라고 속삭였다.
“아니, 마이스트로님이 몸소 작곡하셨지 않습니까!” 라는 반문에,
한숨 쉬면서 “작곡하면서 내가 지휘까지 할 줄은 미처 몰랐지요.”

공연 시간도 길지만 관중의 박수 시간도 길다.
1980년, 지휘자 불레즈 (Pierre Boulez) 의 제작은 마지막 공연에서
90분 동안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오페라가 긴 만큼 이 작품에 대한 평도 많고 가지가지다.
한 개인이 만든 작품으로는 최대의 예술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라고도 하고, 과대 망상증 환자의 작품이라는 악평을 받고도 있다.

<니벨룽의 반지> 의 줄거리는 스칸디나비아와 아이슬런드와 독일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편적인 신화들을 늘리고 줄이고 이리 저리 뚜드려
맞추어 질서 정연한 대하소설을 만들었다.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황금 반지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돌아다니다가 본 고향인 라인강으로 돌아갈 때까지,
신들과 인간들, 난쟁이족과 거인족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최근에 나온 3부작 영화  <반지들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의 원전인
톨킨 (Tolkien) 의 소설도 같은 신화들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내용이 비슷하다.
톨킨은 “바그너의 반지와 내 반지가 둥글다는 것 빼 놓고는 두 작품이 같은 데가 하나도 없다”
라고 말하면서 바그너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제1부는 <라인강의 황금> (Das Rheingold) 이다.

라인강 깊은 곳에 세명의 요정이 황금을 보호하고 있다.
누구든 이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어 가지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황금반지를 만들려면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

지하에 살고 있는 난쟁이 알베리히 (Alberich) 는 요정들과 희롱하러 온다.
황금에 대한 비밀을 알게되자 요정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황금을 빼앗는다.
지하로 돌아와서 동생 미메 (Mime) 를 시켜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고,
반지의 힘으로 난쟁이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난쟁이들을 노예같이 부리며
금광에서 황금을 계속 캐낸다. 신비로운 투구도 만든다.
이 투구를 쓰면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도 있고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다.

한편, 지상에 사는 거인 형제는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Wotan) 의
부탁대로 하늘에 궁전을 건설한 후에, 불의 신 로게 (Loge) 가 정한 계약대로,
보탄의 부인의 여동생을 가지러 온다. 보탄은 그녀 대신에 황금을 주려고
로게와 같이 지하로 내려가 알베리히를 만난다.

알베리히가 마법 투구를 쓰고 여러 가지로 변신하며 자랑을 하자,
로게는 알베리히보고 두꺼비로도 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보탄은 두꺼비가 된 알베리히를 쉽게 잡은 후에 많은 황금을 빼았고
마법 투구와 황금 반지까지 빼앗는다. 악에 바친 알베리히는 황금 반지에 저주를 퍼붙는다.

 이 반지가 저주에 의해 나에게 왔듯이 / 너도 이 반지로 저주를 받으리다 /
이 반지가 나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듯이 / 그 힘으로 반지를 소유하는 자를 죽이리라 /
이 반지를 가진 자는 잃지 않으려다 지치고 / 가지지 못한자는 시기로 괴로울 것이다 /
반지의 주인은 반지의 노예가 된다 //
네 원대로 반지를 가져라 그리고 잘 보관해라 / 내 저주를 피하지 못하리라.       

보탄은 알베리히로부터 빼앗은 황금을 거인들에게 지불한다.
거인 형제는 마법 투구도 가진 후에 보탄이 끼고 있는 황금반지도 빼앗는다.
그들은 황금 반지를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 형이 아우를 죽인다.
저주의 효력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탄은 장엄한 관현악 (The Entry of the Gods into Valhalla) 에 맞추어
부하 신들을 거느리고 무지개 다리를 타고 새 궁전으로 들어가고,
라인강의 요정들은 황금을 빼앗겨 통곡한다:

라인강의 황금 / 순수한 황금 / 그동안 휘황찬란하게 우리를 비추어 준 황금 /
지금도 이 깊은 물 속에서 빛내고 있으면 오죽 좋으랴 /
여기 있어야만 가치가 있고 진실할텐데 /
지상에서 흥청거리는 저질의 비겁한 자들에게 가다니.    

Richard Wagner – DAS RHEINGOLD – Entrance of the Gods into Valhalla (Solti, 1958)

 

제2, 3, 4부는 다음 회에서 다루기로 하고, 기존 오페라를 일대 혁신한 바그너와 그의 음악을 알아보자.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로 이어 내려 온 전통적인 이태리 오페라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 (Aria and Recitative)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레시타티브는 노래 같기도 하고 대화 같기도 한, 노래와 대화의 중간의 읊음을 뜻하는데
극의 진행을 맡았고, 아리아는 감정 표현을 맡아서 하였다.
다시 말해서 주역 가수들은 대화를 레시타티브로 부르다가
어쩌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아리아로 불렀다. 관현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로 이런 아리아와 레시타티브를 반주하는 보조 역활을 하였다.

작곡가들은 전적으로 가수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가수들이 온갖 기교를 과시하면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부를 수 있게 작곡하는 것이다.
벨칸토 (beautiful singing) 성악법이라는 것이다.
청중들은 와서 들으며 즐기다가 가수가 제일 높은 음까지 올라가 오래 끌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였던 것이다.

이런 오페라 형식을 이어받은 베르디는 오페라를 한 단계 올려서 고상하게 발전시켰다.
음악의 구조는 바꾸지 않았으나 내용을 좀 더 극적으로, 주인공들의 성격을 파헤치고,
아리아에서는 쓸데 없이 기교를 부리며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부르는
부분 (coloratura style) 을 제거하였다. 아리아뿐만 아니라 이중창, 앙상블, 합창을 적절히,
그리고 관현악을 효과있고 결단성 있게 사용하였다.

<리골레토> 를 예로 들어보자.
아리아에서는 청중이 좋아하는 팝 (pop) 음악의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는 ‘쿵작작’ 의 연속으로, 가사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리골레토가 딸을 납치한 공작의 부하들에게 부르는
일련의 아리아들은 그의 심경의 변화를 잘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관심한 척, 다음에는 분노, 다음에는 저주, 마음을 바꾸고 청원,
그러다 마지막에는 “내 딸은 내 세상인데” 라며 억장이 무너진다. 

오페라의 혁명가 바그너는 관현악을 성악의 반주 정도로
취급한 오페라 형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성악은 사물의 외면을, 관현악은
그 본질을 표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악을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같이 취급하였다.

아리아와 레시타티브 구별을 없애고, 아리아와 레시타티브의 중간 형태인 아리오조 (arioso) 로
통일하여, 멜로디가 끝나는 듯하면 또 계속하는  ‘무한선율’ (Endless Melody) 로 바꾸었다.
글로 따지면, 레시타티브가 될 절 (paragraph) 들과
아리아가 될 절들이 하나의 길고 긴 문장이 되는 것이다.
제임즈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 에 나오는 3,687 단어로 된 긴 문장을 생각하면 된다. 

관현악은 전통적 7음조 (diatonic scale) 에 사잇음 (# 와 b) 을 더해서
무슨 장조인지 무슨 단조인지 분간하기 힘든 무조 (atonal) 같이 되어,
현대 음악에서 쓰이고 있는 12음조 (chromatic scale) 의 효시가 되었고,
결과로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화음이 많이 쓰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에는 유명한 ‘트리스탄 코드’ (Tristan chord) 라는 화음이 있다.
‘화시레#솔#’ 의 네 음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의 귀에 익은 ‘도미솔시’ 같은 화음이 아니다.
이 코드는 관현악에서 성악과 함께, 또 독자적으로, 계속 변하면서 쓰이는데,
전주곡 시작부터 ‘사랑의 죽음’ (Liebestod) 까지 계속된다.
이러면서 음악은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무한선율’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죽음’은 여주인공 이졸데가 8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부른다.
바라고 바라지만 이루지 못하는 끝 없는 내용과 상통한다. 

오케스트라에 원하는 소리가 없다고 새로운 악기까지 만들었다.
바그너 튜바 (Wagner-tuba) 라고 하는데 호른과 트럼본 소리 사이의 악기이다.

표현 기법으로 라이트모티프 (leitmotif) 를 많이 사용하였다.
우리 말로는 유도동기 (誘導動機) (leading or guiding theme)라고 한다.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 사물, 느낌 또는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표현하여 적절할 때마다 변곡하면서
쓰는 것이다. 짧게는 한 악기로 두 음, 길게는 관현악으로 몇 분을 연주한다.  

바그너 전에도 모티프 (motif) 는 많이 써 왔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에서
처음부터 마지막 악장까지 ‘따따따 따안’ 을 계속 변곡하면서 사용하였다.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들 하지만, 베토벤 자신의 라이트모티프가 아니고
베토벤의 ‘꿈보다’  후세 사람들의 ‘해몽이 좋았다’ 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 전문가들은 100 여개의 라이트모티프를 찾아냈다. 제1부 <라인강의 황금> 에는 30여개의
라이트모티프가 있다. 라인강, 황금, 반지, 저주 등등. 이중에 목관 악기로
조용하게 부는 ‘반지’ 라이트모티프는, 제1부에서 뿐만 아니라 제3부, 제4부에서도 나온다.

    라이트모티프는 할리우드 영화 음악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존 윌리암스는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ET> 등등, 엔니오 모리코네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 <옛날 옛적 서부에서> 등등,
수많은 영화에서 우리들의 귀에 익은 모티프를 알기 쉽고 효과있게 사용하였다.

바그너는 오페라를, 베토벤과 셰익스피어를 합치 듯이, ‘음악극’ (Music drama) 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음악극은 음악과 문학 뿐만 아니라 미술, 무용, 건축이
총망라된 ‘종합예술’ (Gesamtkunstwerk) 이어야한다라고 헀다.

자신이 오페라를 전적으로 감독하기 위해서, 작곡은 물론, 몸소 연출과 조명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관련하였다. 한마디로 마이크로 매너저 (micromanager) 였다.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하기에 알맞도록 오페라 하우스 (Festspielhaus) 까지 세웠다.
혁신적인 면을 들어 보면: 첫째, 청중들이 오페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복잡한 도시를 피하고
조용한 시골인 바이로이트 (Bayreuth) 를 택하였다.  두째, 모든 관중이 무대를 잘 볼 수 있도록
관중석을 부채 모양으로 만들었다. 세째, 오케스트라를 관중들이 못 보게 무대 밑으로 넣었다.
오케스트라 핏 (orchestra pit) 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관중들이 지휘자와 악단의 동작에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악극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였고,
오케스트라가 성악을 압도하지 못하게 하였다. 네째, 건물을 목재로만 사용하여,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첼로같이 울려 퍼지게 하였다.
다섯째, 공연 중에는 관중석을 어둡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