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의 오페라산책 푸치니 (1): 달빛이 맺어 준 사랑

by Jas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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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복 칼럼

2020.10.16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는 당대에 인기가 대단했다.
관객도 평론가도 다같이 그의 오페라를 좋아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세심하고 간결한 작품 구성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의 3대 오페라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은 모두 10대 오페라에 군림해 있다.
그래서 세계 어디서나 해마다 페레니얼같이 피어나고 있다.
이들 없이는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들이 문을 닫을 정도다.

음악계에서는 보통 3대 오페라 작곡가로
모짜르트, 베르디, 바그너를 꼽는다.
푸치니는 그들 주위를 맴돌 정도이거나
한 단계 아래라고 평을 받고도 있다.
모짜르트나 베르디처럼 주역 인물의 성격을
파고들지 못했고,
바그너처럼 관현악으로 줄거리를 잘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에 어느 신진 소프라노는 “푸치니와
베르디를 다 부르기 좋아하는데,
베르디를 연극에 비유한다면
푸치니는 영화에 비유할 수 있다.” 라고 했다.

먼저 <라 보엠> (La Boheme) 을 소개한다.

 

프랑스 파리에 소르본 대학이 있는 라틴 지역 (Latin Quarter) 이 있다.
19세기 때 학생들은 물론 가난한
예술가, 문학가, 지성인들이 모여 살았다.
빈촌이라 값싼 숙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관습을 우습게 알았다. 그래서 제 멋대로 살았고,
성에 자유로웠으며, 서로 도와주었다.
여러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공통어인 라틴어를 썼다.
그래서 그 곳을 라틴 지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헤미아에서 왔으리라 추측했음인지
이들을 보헤미안 (Bohemian) 이라 불렀고,
이 단어는 지금도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 중 한 명인 뮤르거 (Murger) 가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아서
<보헤미안의 정경> (Scenes de la Boheme) 을 썼다. 그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 약 1/5 이 <라 보엠> 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오페라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제 인물이거나
실제 인물들이 합쳐진 가상 인물들이다.

시인 로돌포 (Rodolfo) 와 화가 마르첼로 (Marcello) 는
싼 다락방에 세들고 있다. 째지게 가난해서 불도 못 때고 있다.
친구인 철학가와 음악가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같이 먹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니 나가자고 한다.
로돌포는 할 일이 좀 남아 있다고 친구들을 먼저 내보낸다.

이웃 처녀 미미 (Mimi) 가 불씨를 얻으러 온다.
그녀는 나가다가 촛불이 바람에 꺼지고 열쇠를 떨어뜨린다.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기 시작한다. 여인은 못 찾게 책상 밑에 밀어 넣고,
로돌포는 찾았는데도 못 찾은 척 한다.
그러다 두 손이 마주친다.

로돌포가 ‘그대의 찬 손’ (Che gelida manina) 을 부른다.

그대의 찬 손 / 내가 데워 드리죠 / 어둠 속에서 찾을 필요 없어요 /
곧 달이 밝아져요 기다립시다 / 그동안 날 소개하지요 / 나는 시인입니다  /
가난하지요. 그렇지만 행복하답니다 / 왕처럼 사치하지요 /
사랑의 운율과 송가가 풍부하고요 / 꿈과 환상과 하늘 위의 성이 있지요 /
백만장자의 열정이 있고요 //
그러나 두 도둑한테 빼았기기도 합니다 / 사랑스러운 두 눈이지요 /
지금 그 눈들은 내 모든 것을 빼앗고 있어요 /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요 /
내 빈 가슴이 감미로운 희망으로 채워지니까요 / 나를 좀 알겠지요?

그녀는 ‘남들은 나를 미미라고 불러요’ (Si. Mi chiamano Mimi) 로 대답한다.

남들은 나를 미미라고 불러요 / 그렇지만 내 이름은 루치아이죠 /
수놓으며 삽니다. 그래도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 취미로 백합과 장미를 수놓지요 /
그들은 사랑을, 봄을 이야기 하고 / 꿈과 환상과 시도 말입니다 //
교회는 빠지기도 하지만 기도는 자주 하지요 / 내 작은 방에서 하늘을 쳐다보지요 /
봄이 오면 첫 햇살이 내 방을 비추지요 /
그러면 꽃병에서 장미가 피고 나는 꽃 향기를 맡지요 /
수놓은 향기 없는 장미가 아니지요 / 더 할 말이 없네요 /
지금 당신 일을 방해하고 있지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문스트럭 (moonstruck) 이 된
로돌포와 미미는 하프의 반주를 받으며
이중창 ‘오 사랑스런 여인이여’ (O soave fanciulla) 를 부른다.

(로돌포) 오 사랑스런 여인이여 / 부드러운 달빛이 당신의 사랑스런 얼굴 비추고 /
그 얼굴에서 내 가장 귀한 꿈을 봅니다 /
(같이) 내 사랑, 당신만이 내 마음의 주인이어요 /
(로) 당신은 내 것이오 / (미미, 살짝 빠져 나오며) 친구들이 기다려요 /
(로) 여기서 같이 있읍시다. 밖은 추워요 / (미) 꼭 붙어 있겠어요 /
(로)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 / (미) 사랑해요 /
(같이,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가면서) 사랑, 사랑, 사랑.

현제명 작곡, 이서구 작사의 그랜드 오페라 <춘향전 > 에 나오는
‘사랑의 이중창’ 과 비교해 보자.

(도령, 춘향과 같이) 한번을 보아도 내 사랑 / 열번을 보아도 내 사랑 /
아무리 보아도 사랑 / 어여쁜 춘향 나의 사랑 / 이렇게 보아도 내 사랑 ….. /
(춘향, 도령과 같이) 한 번을 보아도 내 낭군 / 열 번을 보아도 내 사랑 /
아무리 보아도 사랑 / 존귀한 도령 나의 사랑 / …. //
(도) 해가 변할지라도 춘향아 변치 말자 / (춘) 이 몸은 도련님 몸이오 내 변할 바 아니오 /
(도) 이 맘은 철석같으니 / 사랑 영원하리라 /
(춘) 이 몸은 송죽 같으오니 절개 굳으리 //
(같이) 하늘의 저 달도 기우나 / 우리는 햇님과 한 가지 /
영원히 온누리 밝히 비치며 / 사랑 영원하리 / …..

로돌포와 미미는 카페로 가서 친구들과 합세한다.
화가 마르첼로의 옛 애인 무제타 (Musetta) 가 돈 많은 노인과 나타난다.
가난한 마르첼로를 버렸던 것이다. 마르첼로는 무관심한 척 한다.
무제타는 마르첼로한테 추파를 던지며 ‘무제타의 왈쯔’ (Quando me’n vo) 를 부른다.

내가 길을 걸어가면 / 모두 서서 날 쳐다봅니다 /
내 아름다움에 도취가 되지요 / 머리에서 발 끝까지 쳐다봅니다 /
타는 듯한 욕망이 눈에 나타납니다 / 더 매력적인 내 몸을 갈망하는 것이죠 /
강렬한 욕망이 파도칩니다 / 그걸 보면 나는 행복해 죽겠어요 //
나를 알고 기억하는 당신, 쓰라리지요? / 날 피할 재주가 없을 테지요 /
그 고통 안 나타내려고 고심하지만 / 당신을 죽여 주지요? /
속상해 죽겠지요?

이 곡은 1960년에 ‘돈 츄 노우’ (Don’t You Know?) 로 탈바꿈이 되어,
가수 델라 리즈 (Della Reese) 가 불렀고 팝송 제1위에 올랐다.

미미는 로돌포와, 무제타는 마르첼로와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민다.
어느날 미미가 마르첼로를 찾아와서 하소연한다.

로돌포는 나를 항상 피해요 / 질투가 너무 심해요 /
남을 처다봐도, 남과 한마디만 해도 의심해요 /
무슨 꿈을 꾸는지까지 감시하는 걸요 /
애인 하나 찾아보라고 하면서 집을 나갔어요.

로돌포도 집을 나와 마르첼로를 찾아온다.

내가 미미를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 걸 넌 잘 알지 /
미미는 폐병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있어 /
살 에이는 찬 바람 새 들어오는데 땔감은 없고 /
이렇게 나하고 살다간 죽음을 재촉할 뿐 / 난 죄의식으로 꽉 차있어 /
미미는 가난으로 시들어가는 연약한 꽃 /
내 사랑으로는 구하지 못해 / 난 너무 무서워.

미미와 로돌포는 헤어진다. 봄이 오면 다시 만날 기대를 가지고서.
마르첼로와 무제타도 헤어진다.
무제타는 “남편처럼 구는 애인은 필요 없어” 하면서.
미미의 애절한 이별의 아리아 ‘아디오’ (Addio, senza rancor) 를 들어보자:

아디오 / 당신의  사랑으로 행복했어요 /
미미는 다시 고독한 방으로 가서 / 꽃을 수놓을 겁니다 /
친구로 헤어집시다 / 작은 금반지와 기도 책 가지러 누굴 보내겠어요 /
벼개 밑에 당신이 사준 분홍색 보네트 / 원하시면 제 사랑의 기념으로 가지세요.    

미미는 돈 좀 있는 사람과 잠시 동거하다가 헤어져서 혼자 산다.
목숨이 경각에 이른 것을 깨닫는다. “로돌포 품에 안겨 죽고 싶다.
그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무제타의 도움을 받으며 로돌포에게 온다.
로돌포는 미미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와 이중창을 부른다.

(미미) 당신은 나의 사랑이고 인생이오 / (로돌포) 나의 아름다운 미미! /
(미) 아직도 내가 아름다워요? /  (로) 해뜰 때같이 아름다워요 /
(미) 비유를 잘못하는군요 / 해질 때같이 아름답다고 하셔야지요.

여성들은 죽으면서도 아름답기를 원한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에서도 마농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해줘요 / 날 꼭 안아줘요 /
시간이 없어요 / 당신의 마농은 당신을 사랑했어요 /
나는 죽어도 내 사랑은 죽지 않을거예요.

마스네의 <마농> 에서는:

(데 그뤼) 포기하지 말아요 / 밤이 찾아오고 / 첫 별을 쳐다봐요 /
(마농) 다이아먼드처럼 보이네요 / 나는 아직도 요염하지요?  

각설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미약한 미미한테 너무 강하다고 느낀 로돌포는 커튼을 닫는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달빛이 환하게 들어오라고 커튼을 활짝 열었는데.

무제타는 기도한다. “마돈나여, 저는 보잘 것 없지만 미미는 하늘의 천사입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살려 주옵소서.”
그리고 미미의 ‘그대의 찬 손’ 을 데우려고 귀거리를 팔아 토시 (muff) 를 사오고,
마르첼로는 약을 사오고, 철학가는 단벌 외투를 팔아
의사를 부르지만, 허사로다! 미미의 숨이 끊어진다.
로돌포는 “미미, 미미” 부르며 미미를 끌어 안고,
오케스트라의 고조되어가는 음악과 함께 막이 내린다.

푸치니도 밀란에서 공부할 때 보헤미안 생활을 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를 작곡한 마스카니와 싸구려 하숙방에 같이 살면서,
방세는 밀리고 식당에서는 외상으로 먹었다. 빚쟁이로 부터 서로 보호해 주었다.
코트를 전당포에 마끼고 돈도 꾸었는데, 이때는 절박해서가 아니고,
발레 배우는 여학생과 하루밤을 지내기 위해서였지만.
이런 경험이 <라 보엠> 에서, 로돌포와 마르첼로가 같이 하숙하는 경우나,
하숙 주인이 돈 받으러 온 에피소드나, 철학가가 외투를 파는 장면과 다를 바 없다.  

초연할 때 제작진에서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름 없는 지휘자를 쓰기로 했다.
푸치니가 연습 첫날에 이 젊은 지휘자의 능력을 알아 보았다.
토스카니니 (Toscanini) 였다. 죽을 때까지 지휘를 마꼈다.

둘이 의견의 차이로 사이가 껄끔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푸치니가 고객들한테 선물로
푸루트케익을 다 보낸 후 토스카니니에게도 보낸 걸 알았다.
부랴부랴 전보를 쳤다. “잘못 선물 보냈음” 이라고.
토스카니니로 부터 금새 답장이 왔다. “잘못 선물 먹었음.”

푸치니를 계속 후원해주며 그의 오페라들을 출판해 준 리코르디 (Giulio Ricordi) 는
“이번에 <라 보엠> 이 대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출판업을 집어치우고
살라미 파는 장사꾼이 되겠다” 라고 말했다.
예언대로 대 성공했을 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칼로 탈바꿈한 <렌트> (Rent) 는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고 퓰리처상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