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 칼럼
2020.11.02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의 오페라 <토스카> (Tosca) 를 소개한다.
<토스카> 의 原典은 프랑스 왕실의 극작가 사르도우 (Sardou) 가
배우 베르나르 (Sarah Bernhardt) 를 위해 쓴 연극이다.
삼천번 공연했던 만큼 성공적이었고
베르나르는 이 극으로 인해 스타가 되었다.
그래서 푸치니도, 베르디도, 프란체티도 다같이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오페라 대본 저작권이 프란체티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푸치니가 가로 챘다.
푸치니의 오페라가 성공한 후로는 사르도우의 연극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여배우 토스카는 성당의 벽화를
그리고 있는 애인 카바라도시 (Cavaradossi) 를 찾아온다.
완성되어 가는 마리아 상을 쳐다본다.
너무 아름답다.
파란 눈을 가진 이웃 처녀와
너무 비슷하게 보인다. 질투를 느낀다.
(토스카가 벽화를 보면서) 저 눈 (Ah, quegli occhi), 저 눈이 싫어요 /
(카바라도시) 이 세상 어느 눈도 당신의 검고 타는 듯한 눈에 비교가 안되지요 /
사랑으로 부드러워 진, 화가나서 노여워 진, 당신의 그 눈 /
그 눈에 나는 노예가 되었어요 /
(토스카)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말하는군요 /
그렇지만 저 파란 눈 만큼은 검게 칠해 주세요 /
(카) 당신은 질투쟁이 (Mia gelosa) /
(토) 내 이 심정 이해하신다면 날 용서할 거예요 / … //
(카바라도시가 토스카를 포옹한다) /
(토) 성당 안에 있는 걸 잊었군요 / (이번에는 토스카가 안긴다) /
(카) 성모님 앞에서 포옹을 하다니 /
(토) 성모님은 용서를 잘 해 주시지 않아요?
이 주제곡은 후에도 여러번 메아리 치듯 나와서
오페라가 끝날 때는 우리의 귀에 못이 박히듯 남을 것이다.
이 이중창은 지난 회에서 나온 ‘오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O soave fanciulla) 와 같이
푸치니의 아름다운 멜로디의 극치라고들 한다.
카바라도시는 독립운동을 하며 피해 다니는 친구를 숨겨주다가 체포된다.
경찰청장은 이 기회에 카바라도시를 없애고
몰래 사랑해온 토스카를 취하려한다. 카바라도시는 고문을 받는다.
그의 비명소리에 토스카는 실토를 하고,
비밀이 탄로난 카바라도시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토스카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 탐욕스러운
경찰청장에게 몸을 주기로 약속을 하면서
‘예술을 위해 살고’ (Vissi d’arte) 를 부른다.
예술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살아 왔어요 / 미물 하나 해친 적 없고 /
불쌍한 사람 누구나 남몰래 도왔지요 //
항상 신앙 속에 살아 왔고 정성껏 기도했어요 / 매일 제단엔 꽃을 바쳤지요 /
그런데 슬픔과 고통과 시련속에 빠졌어요 / 주여, 어찌 저를 이렇게 보답하십니까? //
성모님 옷을 보석으로 장식했고 /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불렀어요 /
더 밝게 빛나라고 별한테도 불렀어요 / 주여, 어찌 저를 이렇게 보답하십니까?
이 아리아는 칼라스 (Maria Callas) 의 18번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따르지 못했고 그 후로도 능가하지 못했다.
다행히 동영상이 남아 있어서 유튜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보통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부른다.
너무 슬퍼서 서있을 기운조차 없는 것같이 보인다. 사연이 있다.
소프라노 제릿자 (Maria Jeritza) 가 연습 도중에
상대역 바리톤한테 밀려 쓰러졌다. 일어서지를 못하고 앉아서 불렀는데
푸치니가 보고 있다가 감동해서 “지금부터는 꼭 그렇게 앉아서 불러요” 라고 말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가수들이 작대기같이 서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부른다는 것은 큰 변화이었다.
지금은 연기에 비중을 많이 주어서 걷고 뛰고 앉고 눕고 하면서
노래부를 뿐 아니라 에로틱하기로도 영화에 못지않다.
진한 키스는 다반사요, 여성 가수들은 러브 신에서 다리를 활짝 벌린다.
자극이 필요한 현대 관중에게 호응하는 것이다.
다리 벌리는 이야기를 해보자.
보수적인 베를린 필하모닉 관현악단에서는 2007년에야
처음으로 여성 첼리스트를 입단시켰다.
왜 여성 첼리스트를 끝까지 안 뽑으려 했는가 하면,
첫째, 첼로는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연주를 더 잘한다고 믿었고,
둘째, 그당시 12명의 남성 첼리스트는 너무 호흡이 잘 맞아서
여성이 끼게되면 리듬이 깨진다고 생각했다.
그것 보다는, 무대에서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침실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몰라도,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키스 이야기 하나 해보자. 한국 영화사를 뒤져 보면,
조미령이 김진규와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는데
두 얼굴 사이에 유리 한 장을 끼우고 촬영하였다고 한다.
각설하고, 경찰청장은 부하에게 실탄 없이 총살하는 척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둘이 도망갈 수 있는 통행권을 써준다.
토스카는 통행권을 받은 후 “나의 키스를 받아라” 하면서
경찰청장을 칼로 찔러 죽인다. 집에 들려 도주에 필요한 돈 될만한
귀중품을 들고 사형장으로 달려간다.
한편, 카바라도시는 사형장에서 ‘별들은 빛나고’ (E lucevan le stelle)’ 를 부른다.
사형 당하기 직전, 지난 날 토스카와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죽어야하는 처참한 신세를 통탄하는 아리아이다.
노래를 끝내고는 쓰러져 흐느낀다.
이 아리아는 옛날 대학생 시절에 술마시면서 내용도 모르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질러대면서 취해서들 쓰러졌던 노래다.
별들은 빛나고 들판은 향기로웠지 / 과수원 문 소리가 들리면 /
길 따라 사뿐히 밟는 발자국 소리 / 꽃 향기 날리며 그녀가 나타나 /
활짝 벌린 내 양팔에 안겨 왔었지 //
아, 달콤한 입맞춤, 아, 오랜 포옹 / 떨면서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현혹 되었어 /
이제는 사랑의 꿈 영원히 사라지고 /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군 /
죽는다 절망이다 / 생이 이렇게 귀한 줄 미처 몰랐다.
현제명 작곡, 이서구 작사의 그랜드 오페라 <춘향전> 의 이중창을 들어보자.
(춘향) 그리워 그리워 사랑 그리워 / 해지고 달뜨면 별을 헤면서 /
돌아올 이날을 기다렸나니 / 꿈같이 님 만나 마음 설레요 /
(도령) 천리 길이 멀다 하였소 / 물 건너 산 넘어 한양인데 / 그리운 님 보러 내 왔느니라 /
(같이) 사랑 사랑 우리 사랑 / 잘 되어도 우리 사랑 / 못 되어도 우리 사랑 /
봄이 되어 꽃이 피고 / 밤이 되어 달 뜨면 / 님을 그려 보나니 /
위대하다 우리 사랑 / 산과 같을까 바다와 같을까 //
(춘) 서방님 내일은 내가 죽는 날이요 / 시체나 찾아 묻어주오 /
어머니, 오늘 밤이라도 새 옷 드리고 / 진지 대접 잘 하시오 /
(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오 / 부디 경솔한 마음은 먹지 마소 /
(같이) 사랑 사랑 …..
경찰청장의 거짓 약속과는 달리 카바라도시는 총살당하고,
토스카는 성 아래로 투신해 죽는다.
애인을 살리기 위해 몸을 주기로 약속을 하는 예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에서도 나온다.
레오노라는 사랑하는 만리코를 살리기 위해 루나 공작에게 몸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독약을 마시고 감옥에 같혀있는 만리코를 찾아간다:
(레)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 빨리 도망하세요 / (만) 자 갑시다 /
(레) 나는 여기 있어야 하고 / 당신은 살아야 해요 /
(만) 왜 날 살려 주는 거요? 무슨 값을 치뤘오 / 알겠오 / 사랑을 바꾸었구료 /이 배반자야! /
(레) 너무해요 / 분노로 눈이 멀었구료 / 잔인해요 /
(만) 날 사랑한다더니 /
(레) 시간 없어요 지금 도망하세요 /
(만) 미워 저주해 /
(레) 저주를 풀어요 대신 절 위해 기도 … / (쓰러지며) /
난 죽어요 / 손은 얼음처럼 차지지만 가슴은 불이 … /
(만) 무슨 짓 /
(레) 그자와 살기보다는 죽어서 당신 살리는 것이 … /
(만) 이 천사를 저주하다니.
각설하고, 각본에 의하면 토스카는 검은 눈,
검은 머리의 여성 (brunette) 이기 때문에
금발의 제릿자도 가발을 써야 했다.
자랑스러운 금발 위에 흑색 가발을 쓰다니.
푸치니는 “마담, 이탈리아에도 금발이 좀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들이지요” 라고 말하면서
가발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이렇듯 푸치니는 제릿자가 토스카 되기를 원했다.
한번은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가
개인 사정으로 도중 하차를 하게 되었다.
누가 이름도 없는 젊은 테너를 푸치니에게 보냈다.
푸치니는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그 청년의 아리아를 듣다가,
“누가 당신을 나한테 보냈소, 신 (God) 이 보냈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 청년은 카루조 (Enrico Caruso) 였다.
유명한 평론가이며 음악가인 커먼 (Joseph Kerman) 은 1952년에 토스카를
‘저질의 선정적 작품’ (shabby little shocker) 이라고 악평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사실은 버나드 쇼 (Bernard Shaw) 가 사도우의 연극을 보고
‘이 연극이 오페라화 된다면 저질의 선정적 작품 (tawdry little shocker)
이 될 수 밖에 없다’ 라고 한 것을 잘못 인용했던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