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 칼럼
2020.09.20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는 모짜르트와 바그너와 함께
3대 오페라 작곡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의 3대 오페라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는 모두 10대 오페라에 속해있다. 오늘은 누구나 한번은 흥얼거렸을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가 나오는 <리골레토> (Rigoletto) 를 감상해보자.
<리골레토> 의 原典은 위고 (Victor Hugo) 의 연극 <방탕한 르로이 왕> (Le Roi s’Amuse) 이다.
왕을 비난하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초연 하루만에 공연 금지 받았던 연극이다.
베르디는 줄거리를 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를 이탈리아로,
왕을 공작으로, 실제 인물이었던 어릿광대의 이름을 리골레토로, 등등.
리골레토는 곱추이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만투아 공작 밑에서
어릿광대로 있으면서 공작의 성 행각을 도와준다.
그래서 리골레토는 공작의 신하로부터 미움을 한몸에 다 받고,
공작의 희생자로부터 저주받으라는 말을 듣는다.
미움에 관한 이야기 하나 하고 넘어가자.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중에 “남을 미워하지 않는 분은 손들어 보십시오” 했더니
한 사람만이 손을 들었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이가 지긋이 든
이 노인 왈, “내가 미워하던 녀석들이 모두 죽었어요.”
각설하고, 어떤 공작이냐하면, ‘이 여인 저 여자’ (Questa o quella) 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여인 저 여자 / 나는 다 좋아 / 한 여자 한테만 마음 줄 수 없지 /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운명이 나에게 준 선물 / 누가 오늘 나를 현혹하면 / 내일은 딴 여인이 //
충실은 노예 / 전염병 피하듯 해야지 / 자유가 없으면 사랑을 못해 /
일단 내 마음에 들면 / 모든 규칙은 저리가야 //
질투에 쌓인 남편이나 가슴 앓는 연인들 /웃기는 자들.
리골레토는 누구에게나 천대를 받고 있지만 아름다운 딸 질다 (Gilda) 가 있다.
희망이요 인생의 유일한 보람이다.
질다의 어머니는 오래 전에 죽었는데 곱추한테 연민의 정을 느껴 같이 살다가 질다를 낳았던 것이다.
리골레토는 질다를 과잉 보호한다.
(리골레토, 유모에게) 순진한 이 꽃 잘 보호하오 /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주오 /
딴 꽃들을 부러트린 폭풍에서 / (질다) 걱정마세요 /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절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공작은 학생으로 변장하여 질다를 유혹한다.
순진한 질다는 사랑에 빠진다. 질다의 독백인 ‘사랑스러운 이름’ (Caro nome)을 들어보자.
사랑스러운 당신의 이름 / 너무 감미롭게 내 귀를 적셔요 /
사랑의 환희를 내 가슴에 영원히 심어 주셨지요 //
내 모든 생각과 바람은 당신 만을 위한 것 /
내가 죽을 때 마지막 숨도 당신을 위해 쉬겠어요.
첫 사랑에 도취된 질다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처음에는 천천히,
그 다음에는 콜로라추라 기법으로, 마지막에는 처음을 다시 반복한다.
‘다 카포 아리아’ (da capo aria) 이다.
순수한 사랑의 기쁨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퍼져 나온다.
이 곡은 선생님들이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 오는 학생들 한테서 듣고 싶어하는 곡 중 하나이다.
드디어 공작은 질다를 강간한다. 리골레토는 분노하여:
네 이름은 죄로다. (You are Crime.)
내 이름은 벌이로다. (I am Punishment.)
라고 고함지르며 살인 청부업자를 찾아간다.
살인업자는 칼을 갈고 그의 누이 맛달레나 (Maddalena) 는 공작을 그들의 술집으로 유혹한다.
공작은 술집에 와서 맛달레나와 희롱을 한다.
리골레토는 딸을 데리고 그 술집 밖에 와서 집안을 엿본다.
아직도 공작을 사랑하는 질다에게 공작이 바람 피우는 현장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술집 안에서는 공작과 맛달레나가 희롱하는데,
밖에서는 질다와 리골레토가 안을 드려다 보면서,
질다는 배반 당한 슬픔을, 리골레토는 복수를 다짐하는 노래를 부른다.
사중창, ‘사랑스러운 여인아’ (Bella figlia dell’amore) 이다.
(공작) 사랑스러운 여인아, 네 매력에 노예가 되었구나 /
네 말 한 마디면 내 모든 슬픔 즐거움이 되겠다 / 내 가슴 얼마나 뛰는지 만져 보아라 //
(맛달레나) 당신 말 믿는 바본줄 아세요? /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
그런 농담 들을 때면 웃음이 나오지요 //
(질다) 저 배반자는 똑 같은 말로 나를 속였지 /
즐거움과 희망은 다 사라지고 비참한 파멸만 남았어 / 잔인한 운명이다.
미워해야 할 인간을 지금도 사랑하다니 //
(리골레토) 질다야, 공작의 속임 수를 보았지? 슬퍼해야 소용 없어 /
(혼잣 말로) 복수만이 내가 할 일 / 공작의 죽음만이 나의 위로로다.
이 4중창은 테너, 알토, 소프라노, 바리톤이 엉키고 설키며,
주고 받기도 하고 독백도 하면서 4분 동안 계속된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순수한 매직 (magic) 이고 황금’ 이라고 찬사를 던진다.
위고는 자신의 연극보다 인기 상승 일로에 있는 <리골레토> 에 질투를 느껴서
6년 동안이나 파리에서 공연을 못하게 방해를 했지만
<리골레토> 의 위대함을 인정했으며 이 사중창에 대해서 말하기를:
“만일 내 연극에서 네 인물이 동시에 말하면서
대사와 감정을 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면
내 연극도 <리골레토> 못지않게 인기가 좋았을 것이다.”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영화 감독으로 처음 만든 <사중창> (Quartet) 이라는 영화가 있다.
은퇴한 음악가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왕년의 명 콤비 네 가수가 차례로 들어온다.
매년 음악회를 개최하는데 이 네 명이 우여곡절 끝에
바로 이 유명한 사중창을 부르기로 하고 무대에 나선다.
늙은이들이 어떻게 부를까 무척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영화를 직접 보시기 바란다. 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네들,
이 영화를 보시면 공감이 가는 데가 많을 것이다
리골레토는 “잘 보았지. 싹 잊어버려. 내일 멀리 딴 곳으로 이사를 가자” 하고는 딸을 집으로 보낸다.
자신도 자리를 비운다. 공작은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잠이든다.
살인자가 칼을 들고 공작을 죽이려는데 맛달레나가 말린다.
공작한테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공작 대신 다음에 들어 올 손님을 죽여서
자루에 넣어 리골레토에게 주기로 한다.
몰래 다시 돌아온 질다는 이들의 계획 변경까지 엿듣는다.
“저이가 죽어서는 안돼. 내가 대신 죽어야지” 하고는
손님으로 가장하고 술집에 들어가 칼에 맞아 죽는다.
다시 돌아온 리골레토는 자루를 받는다.
강물에 자루를 던져 버리려는데 술집에서 잠이 깬 공작이 노래를 부른다.
우리에게는 ‘여자의 마음’ 으로 알려진 ‘여자는 잘 변해’ (La donna e mobile) 이다.
이 카바티나 (cavatina, 처음을 다시 부르지 않는 아리아) 는
공작이 술집에 와서 맛달레나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한번 부르고,
한 잠 자고 기대에 벅차 또 한번 부른다.
여자는 잘 변해, 바람에 날리는 깃털과 같이 /
사랑스런 얼굴은 눈물과 웃음으로 순간 순간 변하며 우리를 속인다 /
여자는 잘 변해, 바람에 날리는 깃털과 같이 //
여자의 마음을 믿는 남자는 언제나 비참해 /
그래도 여자의 사랑을 맛보지 못하면 희열을 모르지 /
여자는 잘 변해, 바람에 날리는 깃털과 같이.
우리가 듣고 부르던 가사는 아래와 같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
눈물을 흘리며 향긋 웃는 얼굴로 남자를 속이는 여자의 마음 /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 변합니다 //
그 마음 어디에 둘 곳을 모르며 항상 들뜬 어리석은 여자여 /
달콤한 사랑의 재미도 모르며 밤이나 낮이나 꿈속을 헤맨다 /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 변합니다.
대조해보면, 첫째, 가사를 곡조와 싱크하려면 ‘여자는 잘 변해’ 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둘째, 원본에서는 깃털로 되어 있지, 갈대란 말이 없다.
셋째, 2절을 보자. 원본에서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한국 판은 여자의 이야기다.
정도에 지나친 의역이다.
번역에 관한 육이오 사변 때의 일화가 있다.
어느 미국 장성이 한국에 나와 군인들을 위로했다. 미군 뿐만 아니라 국군에게도 많이 다녔다.
언제나 농담으로 시작했다. 한번은 농담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통역관은 짧게 통역을 했고 군인들은 우뢰와 같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나중에 통역관 한테 질문을 했다. “내 긴 농담을 그렇게 짧은 말로 통역하다니
생각할 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요.” 통역관 왈,
“장군님께서 지금 긴 농담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웃고 박수를 치십시요. 이렇게 말했지요.”
베르디는 이 아리아가 히트 곡이 될 줄 확신했다.
그는 이 아리아가 연습 도중에 새어 나가서 초연하기도 전에
곤돌라 뱃사공이 먼저 부르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 아리아를 빼놓고 연습시키다가 초연 이틀 전에서야 악보를 나누어 주었다.
예상대로 이 곡은 대 히트를 쳤으며 오페라도 성공적이었다.
베니스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로 유럽으로 전 세계로 삽시간에 퍼졌다.
이 곡은 가사를 바꾸어 어린이들의 노래로도 만들어 졌다.
곡의 제목은 ‘여름 바다로’ (Over the summer sea). 그래서 노소가 다 같이 부르게 되었다.
힛트 1위를 계속 유지하다가 푸치니의 <투란도트> 에 나오는
‘아무도 잠들지 마라’ (Nessun dorma) 를 파바로티가 부르면서 2위로 밀려났다.
테너 가수가 부르는 10위 안에 속하는 아리아로는
이 두 아리아 외에도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
푸치니의 <라 보엠> 과 <토스카> 에 각각 나오는 ‘그대의 찬손’ (Che gelida manina) 과
‘저 별은 빛나고’ (E lucevan le stelle) 등을 들 수 있다.
각설하고, 죽어서 자루 속에 있을 줄 알았던 공작의 노래를 들으며
혼란에 빠진 리골레토, 자루를 찢어 본다.
자루 속에서 죽어가던 딸은 “하늘에 계신 어머님을 만나러 갑니다.
거기서 아버님 위해 기도하겠어요” 하며 죽는다.
리골레토는 딸을 껴안고 “저주 받았구나” (Ah, la maledizione) 하면서 통곡한다.
2013년에 제작한 <리골레토> 는 1960년대 라스 베가스의 도박장을 무대로 삼았다.
그래서 감독도 가수들도 수퍼 (오페라의 엑스트라) 들도,
도박장을 경영하며 노래 부르던 시나트라를 위시해서
피터 로퍼드,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등이 나오는 동영상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베르디는 반 세기 동안 26개의 오페라를 작곡 감독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 계를 석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의 장례식은 유서에 따라 간소하게 치루어졌지만
일년 후 시체를 옮길 때에는 30만명의 군중들이 뒤를 따르며
820명의 스칼라 (Teatro alla Scala) 합창단에 합세하여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그의 오페라 <나부코> (Nabucco) 에 나오는
‘날아라, 생각아’ (Va, Pensiero) 를 불렀다.
<나부코> 는 베르디의 세번째 작품으로,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가 옐루살렘의 솔로몬 궁전을 공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날아라, 생각아’ 는 포로가 된 유대인들이 노역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합창이다.
날아라, 생각아
날아라, 내 생각아, 황금의 날개를 타고 / 들과 언덕에 가서 앉아라 /
부드럽고 온화한 내 고향 땅 / 향기로운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 /
요단 강변과 무너진 시온성이 / 우리를 반기리라 /
오 내 고향, 이제는 빼앗긴 너무 아름다운 곳 /
오 내 기억, 이제는 잊혀진 너무 귀중한 추억 //
옛 예언자들의 하프 소리 / 지금은 어찌 이리도 잠잠한가? /
가슴 깊이 새겨진 옛 추억 되살려주고 / 지나간 옛 일을 말해주오 /
솔로몬성의 운명을 되새기며 / 비탄에 쌓여 탄식하지 않도록 /
주께서 내게 용기를 주시어 / 이 고통을 이겨내게 해 주소서.
밀라노에 있는 스칼라 극장에서 <나부코> 를 초연했는데
관중들은 이 합창이 끝나자 열광적으로 앙콜을 청했다.
합창의 음악도 좋아했겠지만, 그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서 울분을 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잃고 타국에 붙잡혀 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유대인들에게 동감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나부코> 는 노래의 가사대로 ‘황금의 날개를 타고’ 퍼져 나갔고
베르디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나부코> 초연에 주인공으로 나온 소프라노 스트레포니 (Strepponi) 는
미모와 완벽한 벨칸토 창법과 훌륭한 연기로 관중을 매료시킨
‘완전한 프리마 돈나’ (prima donna assolut) 였다. 칼라스의 전신이었다.
후에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다. 결혼 전에 베르디와 동거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마을에도 교회에도 못나오게 해서 애를 먹었지만
둘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목소리의 쇠퇴로 일찍이 무대를 떠났지만
베르디가 오페라 작곡할 때마다 아리아를 처음으로 불러주었다.
베르디가 철이 지나서 힘들게 구해온 제비꽃의 향기도 맡지 못한 채
불치병으로 죽었고 4년 후에 베르디도 따라갔다.
베르디의 첫번째 부인은 바렛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으로 음악 애호가였는데
베르디가 소년이었을 때부터 후원해 주었다. 베르디는 그를 제이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너무 가난한 베르디가 방세가 밀려 고민하고 있을 때
바렛지는 자기 보석함에 있는 귀중품으로 밀린 방세를 마련해 주었다.
베르디는 이에 감격하여 몇배로 보상해 주려고 맹서했지만
바렛지는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베르디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꽃다운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Portrait of Giuseppe Verdi by Giovanni Boldini, 1886 from Wike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