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 칼럼
2020.10.01
우리들의 눈물을 제일 많이 흘리게 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지만 필자가 흘린 눈물로 재보면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의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가 아닐 수 없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번역하면 ‘타락한 여인’ 또는 ‘버려진 여인’ (fallen woman) 이다.
우리에게는 <椿姬> (동백꽃 여인) 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이 오페라의 原典 소설 이름이기 때문이다.
합해서,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여인이 남자들한테 버림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고급 창녀 비올레타 (Violetta) 는 파리 상류사회에서
매춘을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있다.
폐결핵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는 쾌락으로 매일을 보낸다.
그녀 주위의 남성들과는 달리 그녀의 건강을 걱정해 온 알프레도 (Alfredo) 가 와서
유명한 ‘축배의 노래’ (Libiamo ne’ lieti calici) 를 부른다.
알프레도의 사랑의 찬가를 비올레타는 쾌락의 찬가로 응수한다.
(알프레도) 마시자 마시자 / 즐거운 잔 속에 아름다운 꽃피네 /
덧 없이 흐르는 세월 / 이 잔으로 즐기세 / 사랑의 잔, 흥분 속에서 마셔보세 /
그대의 고운 눈 앞에 모든 근심 사라지네 /
마시자, 우리의 따뜻한 입술로 / 사랑의 잔 속에 참 행복 얻으리.
(비올레타) 나의 모든 행복한 나날들 그대들 때문이오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어리석은 것 / 기쁜 꿈을 제하면 허무 할 뿐이요 /
사랑의 기쁨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꽃들도 피고 지면 다시는 피지 않소 /
즐기세 즐기세 / 우리의 생명이 타는 동안 / 커다란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린다오.
알프레도는 사랑을 고백한다 (Un di felice).
천상의 어느날 / 아름답고 눈부신 당신을 보았소 /
그날부터 남몰래 당신을 열렬히 사모해왔지요 /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의 심장의 박동이고 전 우주의 박동이라오 /
생전 처음 느끼는 신비로운 힘 / 무한한 고통이며 무한한 희열이오.
비올레타는 사랑을 알게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알프레도와 함께 행복한 전원 생활을 한다.
그동안 모은 돈을 써 가면서. 그러나 지상의 천국의 생활도 3개월.
알프레도가 돈을 마련하려고 파리로 갔을 때
그의 아버지 제르몽 (Germont) 이 비올레타를 찾아온다. 헤어지라는 것이다.
알프레도의 누이가 결혼을 하려는 참인데,
둘의 관계가 가문을 더럽혀서 문제가 되리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당신은 지금 젊고 아름다워요 / 세월은 살같이 흘러 /
당신의 아름다움도 곧 사라지고 말지요 / 남자들은 대개 충실하지 않습니다 /
당신한테 권태를 느낀다면 어찌 될 거요? /
그때는 당신에게 애정의 향기는 모두 사라지고 /
하늘도 당신에게 축복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요.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누이의 장래를 위하여 또 그의 가문을 위해서 헤어지기로한다.
이것이 버림을 받은 여인의 가련한 운명이로구나 /
드디어 올 것이 왔어 / 모든 기쁨 영원히 사라지고 /
하나님은 나를 긍휼이 여기겠지만 / 그는 불쌍한 나를 용서하지 않을꺼야 /
(제르몽에게) 어여쁜 따님께 이 말을 전해 주세요 /
불쌍한 여자의 희생이 있었다고 / 행복의 서광이 비추기 전에 그 여자는 죽었다고 /
그 희생은 따님을 위한 것이었다고요 / … /
내 심장의 마지막 고동은 당신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전해 주세요 / … /
나를 딸처럼 안아주세요 / 내게 용기를 주세요.
비올레타는 이별의 편지를 써놓고 파리로 가서 방금 초대받은 파티에 참석한다.
뒤 쫓아온 알프레도는 배반당했다는 분노와 질투로 제 정신을 잃고
파티 참석자들 앞에서 비올레타에게 모욕을 준다. 그녀는:
당신은 내 마음 속에 꽉 찬 사랑을 상상도 못합니다 /
당신의 이 멸시,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 그러나 언젠가 내 사랑을 깨달을 때 /
죄의식과 후회로 고통 받지 않기만 하느님께 빌겠어요 /
나는 죽은 후에도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비올레타는 마음의 병으로 폐결핵이 악화되어 죽음에 임한다.
제르몽이 이 소식을 듣는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린 이 숭고한 여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사랑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아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아들과 같이 곧 찾아 가겠다고 비올레타에게 편지를 띄운다.
그녀는 편지를 읽으며 환희에 차지만 너무 늦었다면서
‘꿈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을 부른다.
꿈이여 안녕 / 장미꽃 같던 내 볼은 시들어 버렸어 /
알프레도의 사랑은 내 병든 가슴을 지켜주고 / 나의 위로이었고 힘이었는데 /
슬픔과 즐거움 다 사라지고 / 을씨년스러운 무덤이 나를 덮을 거야 /
이 버림받은 내 묘지에는 꽃 한 송이도 없겠지 / 슬퍼 흘리는 눈물도 / 비석조차도 //
주여 죄 많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받아 주옵소서.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애인이 돌아 올 날을 학수고대한다.
일각이 여삼추다. 드디어 알프레도가 도착한다.
우리는 끝까지 같이 살아요 / 당신의 쓰라린 고통을 보상해 주겠오 /
건강을 되찾아서 / 나의 숨결 나의 빛이되고 / 행복한 미래를 꾸밉시다.
이렇게 다시 행복해지자고 다짐하지만, 비올레타는 마지막이 온 것을 깨닫는다.
자기의 초상화가 그려진 장식품을 알프레도의 손에 쥐어 주면서,
우리가 행복했을 때의 제 모습이어요 /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한 저를 기억나게 해 주겠지요 //
훗날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이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녀와 결혼하시고 이것을 주세요 /
하늘 나라에서 그녀와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저의 선물이라고요.
그리고는 그의 품에 안겨 숨이 끊어진다. 마지막 환희의 절규를 토하면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군 / 새로운 힘이 솟아나 / 재생하고 있어!
아직 한번도 오페라를 안 보신 분들에게는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이자
오페라 감독인 제피렐리 (Zeffirelli) 의 영화판 DVD 를 추천한다.
소설 <춘희> (La Dame aux Camelias) 의 작가 듀마 (Dumas, fils) 는
<삼총사> 를 쓴 듀마 (Dumas, père) 의 서자이다.
일년 동안 사귀었던 사교계의 고급 창녀 플레시스 (Marie Plessis) 를 모델로 쓴 자서전적 소설이다.
이 실제 인물인 플레시스는 늘씬한 몸매에 피부가 옅은 분홍색인 미인이었다.
머리는 작은 편이었고 흑발이었다. 앵두같이 빨간 입술을 열고 (듀마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방끗 웃으면 남성들은 얼이 빠졌다고 한다.
방년 16세에 벌써, 공적 또는 사적으로 동반을 잘 해주면 많은 남성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고급 창녀 (courtesan) 가 되었고, 고객과 말 상대가 되기 위해서 문학 예술 시사에 정통해졌다.
그뿐 아니라 귀족 티를 내려고 이름까지 뒤플레시스 (Duplessis) 로 바꾸었다.
그래서 23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듀마를 비롯 음악가 리스트 (Liszt) 를 포함해서 많은 유명인사들의 정부가 되었다.
파리 몽마르트 묘지에 묻혀 있는데 그녀의 묘비 앞에는 꽃이 항상 놓여있다.
오페라에서 비올레타가 “이 버림받은 내 묘지에는 꽃 한송이도 없겠지”
라고 통탄한 말에 감동한 오페라 애호가들이 놔두고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너무 인기가 좋아서 연극, 영화, 오페라, 발레가 되었고
서로 다투어 역을 맡으려 했으니, 연극 배우 베르나르 (Bernhardt), 영화 배우 가르보 (Garbo),
오페라 가수 칼라스 (Callas), 발레리나 폰테인 (Fonteyn) 등이 빠질 리 없었다.
그러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는 초연이 완전 실패로 끝났다.
주로 주역 가수들이 문제였다. 비올레타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청중의 눈물을 자아내기는 커녕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베르디는 공연을 중단하게 했다. 일년 후에 자신의 총 감독 하에 재 공연을 했는데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때부터 전 이탈리아로, 전 유럽으로, 산불처럼 급속도로 퍼졌다.
고급 창녀를 코티전 (courtesan) 이라고 한다.
원래는 궁정 (court) 에서 비밀을 지키며 중요 문서를 전달하는 여인을 일컬었다.
그러던 것이 세상이 바뀌면서 ‘귀족들의 정부’ 로,
다음에는 ‘교육 잘 받고 독립성 강한 헐거운 여자’ 로,
마지막에는 ‘춤과 노래를 배우고 상류 사회의 인사들과 동거하면서
돈을 버는 직업 여인’ 을 뜻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을 들여다 보면 이해가 간다.
귀족들이 사랑 없이 정략 결혼을 하고는 따로 살았기 때문에
궁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부터 만족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문서 전달 여자들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트 (court) 도 ‘구혼하다’ 라는 뜻으로 轉義가 되어 쓰이고도 있다.
궁정이라는 뜻에서 ‘궁정에 살다’ 라는 뜻도 되었고
‘궁정원 같이 행동한다’ 라고 변한 뒤에 ‘구혼하다’ 라는 뜻이 되었다.
한국 음악사를 뒤져 보면 1948년에 처음으로 서양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무슨 오페라를 공연했을까? <라 트라비아타> 였다.
한 많은 우리 아버지들, 눈물을 흘려야 후련한 우리 어머니들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베르디가 이탈리아의 오페라계를 석권하기 전에
로시니 (Rossini) 와 도니제티 (Donizetti) 와 벨리니 (Bellini) 가 있었다.
이 삼총사는 벨칸토 (bel canto) 오페라를 작곡했다.
벨칸토란 ‘아름답게 노래한다’ (beautiful singing) 라는 뜻이다.
음악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기교로 찬 창법 (coloratura) 에 치중하였다.
가수들은 특히 소프라노 가수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리아의 곡조까지 바꾸어 가면서 실력 발휘를 하였다.
베르디는 노래가 아름답기를 원치 않았다.
노래를 극적인 상황에서 심적 갈등이라든가
심리학적 긴장을 표현하기 위한 부속품으로 사용하였다.
벨칸토라는 단순한 성악에서 벗어나 극적인 내용을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오페라> 의 우리말인 歌劇의 歌가 劇의 종속물이 되었다.
그래서 벨칸토는 베르디 후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베르디는 <리골레토 > 에서 아리아 (aria) 와
레시타티브 (recitative, 노래같기도 하지만 노래가 아니고 말하는 것 같지만 말도 아닌 대화) 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엮어서 끊임없는 이중창의 연속이 되게하였고,
<라 트라비아타> 에서 신화, 왕, 귀족, 기사 대신에 고급 창녀를 주인공으로 세워서
베리즈모 (Verismo) 오페라의 효시가 되었다.
이리하여 푸치니의 오페라가 등장하게 되었다.